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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비얀코 Jul 09. 2021

사랑으로 이야기하기,이야기로 사랑하기2-낭독의 기쁨

언제나 주는 사람이 더 많이 받는다!

"독서는 내몸의 리듬을 자연의 리듬과 맞추는 거예요.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해 책을 읽는 거죠." – 고전평론가 고미숙 <다르게 읽기 다르게 살기>


 

아버지께 책을 읽어드리겠다 결심하고 2-3주 정도 주말마다 친정에 들러 아버지가 고르신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드렸다.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나도 기쁜 마음으로 7장까지 같이 읽었는데, 몇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귀가 안 좋으신 아버지가 들으실 수 있게 책을 읽으려면 거의 소리치듯 읽어야 했다. 그러려면 힘도 여간 많이 드는 게 아닌 데다, 읽는 내가 책의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가서 책을 읽어드리려니, 쉬는 날이 너무 많아 리듬이 끊겨 앞에 읽었던 내용과의 연결이 어려웠다.


급기야 3주째 되는 토요일 아침, 친정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시더니, 오랜만에 친구분들과 식당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하셨는데, 그 식당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으니 당분간 친정에 오지 말라고 하시는 거였다.

 

어쩌나? 책 한 권도 못 읽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데....


얼마 전 글을 쓰기 위해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확인해보다 녹음한 내용이 텍스트로까지 변환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느꼈던 기억이 났다.


그래! 낭독을 해서 파일로 보내 드리자! 그러면 볼륨을 높일 수 있으니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고, 매일매일 조금씩 읽어갈 수 있으니 책 읽는 맛도 날 것 같았다.


첫날, 30분쯤 되는 분량을 낭독해 파일을 엄마에게 보내 드렸다. 엄마가 먼저 들으시고, 아버지께 틀어 드리셨단다. “딸의 사랑이 담긴 낭독이라 더 듣기 좋더라.” 엄마는 흐뭇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모르시는 말씀! 낭독을 해보니 체감하는 유익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책의 내용이 더 정확히 마음속에 콕콕 박힌다. 소리를 내려면 글자 한 자 한 자를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하는데 그 과정서 내용이 빠지지 않고 눈과 머리에 정확하게 들어온다. 눈으로만 읽는 것은 씨를 땅에 흩뿌리는 것 같다면, 낭독하는 것은 모 한 포기 한 포기를 그 자리에 뿌리 박히게 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낭독하기 전 눈으로 읽었던 내용은 반도 머리에 남지 않았는데, 낭독을 했던 부분은 아주 많은 부분이 매우 정확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둘째, 몸의 컨디션이 좋아진다. 눈으로 보고 그걸 소리로 내려면, 눈, 뇌, 코, 목, 가슴, 그리고 허리까지 여러 몸의 기관들이 각각의 역할을 하며 서로 반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몸 전체가 알맞게 긴장하고, 영민해지며, 효율적으로 협동하고 반응함이 느껴진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낭독을 권하는 바이다.  


셋째, 다이어트에 좋다. 30분쯤 낭독을 하고 나면 배가 고프다. 그만큼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워낙 음식의 유혹이 많고 움직임이 적은 이 시대에 허기를 느낀다는 것 만도 즐거운 기분이다.


넷째, 청취자에 대한 책임감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게 만든다. 어쩌다 컨디션이 안 좋아 하루를 거르고 나면 파일 안 왔냐고 물으신다니 게을러질 수가 없다. 그렇게 혼자서 늘 3분의 2쯤 읽다 다른 책의 유혹에 넘어가 접어 놓았던 책을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어 낼 수 있었다.


다섯째, 낭독하면서 아버지가, 어머니가 혹은 다른 가족들이 듣게 될 걸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파일로 보관하다 혹시라도 독서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나 독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내주어도 좋을 것 같다.


여섯째,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경향이 있지만 전문 낭독자의 길이 열릴 수도 있겠다. 매일 읽다 보니 낭독 스킬이 날로 는다. 생소한 외국인 이름을 발음한다거나 텍스트를 미리 보며 목소리에 감정을 싣는 것도 익숙해진다. 다양한 소리를 내며 여러 캐릭터의 목소리도 만드는 등 꽤 들을 만한 오디오북을 만들어 간다. 오디오북 시장이 늘어난다는데 언젠가는 나도 전문 낭독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 달에 한 권씩만 낭독해도, 일 년이 가면 12권이 될 거고, 시간이 갈수록, 문장을 읽는 능력, 몸 기관 사이의 반응하는 협응력이 좋아질 것이고, 책 속의 지혜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내 마음도 치유되고 용기를 얻을 것을 생각하니 에너지가 샘솟는다. 매일 30분 투자로 이 정도 수확이면 대박이다! 


이 밖에도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낭독의 유익은 크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낭독은 더더욱 그러하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습니다 - 신약성경 로마서 5:3~4절


낭독을 하며 읽었던 로빈슨 크루소는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로빈슨 크루소는 전 세계 남녀노소에게 잘 알려진 모험기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비와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야생동물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집을 짓고, 음식을 담을 그릇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문명이 생겨나기 전 존재했을 법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당연시하는 문명의 혜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남과 동시에, 문명으로 인해 무능력해지고 무기력해진 스스로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동안이라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 문명의 탈을 벗고, 내 안에 꿈틀대는 창조자이며 혁신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해보고 픈 욕망을 느낀다.


고난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운명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꼈고, 난생 처음 맞닥뜨린 야생의 환경에서 공포와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구한 신의 뜻을 구하며, 유일하게 벗이 된 성경을 붙잡고,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신에 대한 감사를 찾았다. 그 겸허한 감사의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그를 일으켰고, 무기력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패기 없는 청년이었던 그는 용기 있는 개척자로 바뀌어 갔다. 훗날, 우연히 만나게 된 원주민들과 포로들 앞에서, 그는 믿을 수없을 만큼 강인하고 지혜로운 리더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읽는 내내 로빈슨이 겪었던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고난의 침상에서 삶을 인내하고 계신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형태로든 용기를 얻으시기를 기도했다. 내 마음속에도 내가 있는 곳에 대한 감사가 생겨났으며, 일어나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라는 낮은 북소리가 들려옴을 느꼈다. 


역시나 처음에 예상했던 것처럼, 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낭독은, 나에게 훨씬 더 많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매일매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낭독을 하는 시간은 부모님의 평강과 회복을 비는 기도의 시간이자 내 존재의 뿌리에 물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독후감을 묻는 내게 아버지는 첫째, 우리 딸이 아나운서가 돼도 되겠다는 걸 느꼈고, 둘째, 무인도에서 온천만 나온다면 리조트로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오랜 세월을 장애를 가지고 사셔도 특유의 유머 감각은 누가 말리랴!


두 번째 책으로는 손자병법을 읽고 싶으시다는 아버지를 위해, 서양의 손자병법이라는 ‘페르시아의 창업자 키루스 대제의 역전의 병법을 골랐다. 이 책을 낭독하는 동안 또 어떤 축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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