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우연히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원래 하던 이야기가 뻗어나가다 얻어걸리는 재미있는 정보들 말이죠.
오늘 저에게 그런 일이 한건 발생했네요.
제가 있는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라
고등학교 입학 시에 성적이 많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일반계 고등학교의 원서가 시작되는 12월 전에
아이들과 근처의 학교 중에서
자신의 성적과 맞는 학교를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거의 대학교 입학할 때처럼 학부모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교사들까지 매우 진지하게 임하고 있죠.
그래서 2학기가 되면 저는 아이들과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합니다.
제가 중3 담임이다 보니 이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의 상담은 다른 선생님들과는 좀 다릅니다.
성적보다는 아이의 미래나, 아이의 생활, 아이의 가치관에 대한 상담에 더 집중하거든요.
오늘도 한 녀석과 그런 상담을 시작했죠.
어중간하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흔히들 그러하듯
이 아이 역시 여러 학원을 순회하는 바쁜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대부분의 공간에 육신을 전부 투척해 두고 영혼의 일부는 살짝 다른 곳에 떠다니게 하는,
공부보다는 취미생활과 사교생활에 더 진심인 그런 아이였어요.
전 요즘 중3 아이들의 취미생활이 궁금했어요.
남자아이니까 친구들과 만나면 답답한 각종 방 - PC방, 노래방, 플스 방 등 - 을 전전하지 않을까
그런 예상을 하면서 질문을 던졌던 것이죠.
그런데 제 눈치를 보던 아이가 "샘, 사실대로 말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전 제가 얼마나 열린 사람인지 쭉 설명해 주면서
걱정 말고 말해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대했어요.
"오호! 네가 범죄를 저질렀구나, 네 이놈!" 하고 말이죠.
그러나 아이의 입에서는 뜻밖의 사실이 나왔답니다.
"샘, 전 아이들과 볼링장에 자주 가요. "
엥? 이게 뭐지? 전 너무 허탈했죠. 뭐야. 볼링장에 간다고 말하면서 왜
용기란 용기는 다 쥐어짜는 모습으로 사람한테 기대를 갖게 한 거지?
전 아이에게 그게 뭐 어려운 말이라고 그걸 그렇게 어렵게 말하느냐고 물었죠.
사실 제가 아이들 사이에서 엄한 선생님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저와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안 해서 저한테 혼날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더 물어봤죠. 우리 반에 너 말고 또 누가 있냐고요.
와우. 알고 보니 거의 절반 가까운 아이들이 동네에서 하나뿐인 그 볼링장을 함께 다니며
서로 기술도 전수하고 승부 내기도 하고 그런다는 거에요.
그 아이들 중에는 반에서 말 한마디 안 하는 얌전이들이 꽤 포함되어 있었답니다.
영어 단어 revelation은 동사인 reveal의 명사형이에요. reveal의 가장 알려진 의미가
'폭로하다, 드러내다'이지만, 사실 '알려지지 않은 것을 드러내 보이다'라는 의미도 있어요.
그래서 revelation에는 폭로 같은 의미 이외에도, 놀랍고 깨달음을 주는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는 의미가 있죠.
바로 오늘의 제가 겪은 사건이 이러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아이와의 상담 과정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볼링을 치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들의 일상을 제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저의 무지와 소홀함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틀에 박힌 예상을 쉽게 하는 사람이라는 뼈아픈 발견도 뒤따랐죠.
아이들에 대한 소통과 관심에는 그래도 자신 있었던 저이지만
여전히 이렇게 사각지대가 존재했었네요.
좀 더 다가가고, 좀 더 들여다보고, 좀 더 귀 기울이는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에 가까운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교사란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한 종류이고
그것도 끝없이 배워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전제되는 사람임을
우리 반 장난꾸러기 아이에게 배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