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나 외로움 같은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나 또한 고유한 성격을 동시에 가집니다.
이는 비단 감정뿐만이 아닙니다.
삶의 시기마다 겪어야 하는 개인의 경험들 또한
집단적이지만 지극히 개별적이기 때문입니다.
10대 때의 우리는 대부분 학교라는 사회에서 성장을 해나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같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그 교육을 받아들이는 개인들은 각기 다른 자신의 틀로 그 교육을 흡수합니다.
이 개별성이 20대 이후의 선택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 교사의 책무는 아이들이 내려야 할 그 선택의 순간까지
아이들을 무사히 데리고 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교사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아이가 우리 반에는 있습니다.
60대 초반의 아버지와 젊은 중국인 어머니를 둔 이 아이는
얼마 전까지 문제아들을 수용해서 따로 교육을 시키는 센터에 있다가
5월에 현재의 학교, 즉 제가 근무하는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내년 5월까지 보호 감찰을 받는다는 조건을 달고 왔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출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등 일탈을 일삼던 이 아이는
급기야 2학년 때는 20대 중반의 남성을 사귀면서
모텔을 전전하며 집에 잘 안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학교, 가정, 경찰 등의 요청으로 센터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아이는 그곳에서 1년간 생활을 했고, 그 기간이 다해 학교로 복귀했지만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서서히 예전의 생활리듬을 되찾더니
여름 방학을 맞아 결국 완전히 예전의 그 문제아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개학 당일 하루 등교해서 하루 종일 잠만 자더니
현재까지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아이와 온갖 일을 겪은 아버지와 연락해 보니
아버지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 아이가 센터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저도 대꾸해 드릴 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1학기에 제가 아이에게 했던 무수한 말들과 아이의 다짐의 말이
허공에 부질없게 떠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영어 단어 daze는 사람이 생각이나 행동을 정상적으로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멍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이런 상태에 접어들면 마음에 안개가 낀 것처럼 집중을 하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우리 반 아이의 마음은 지금 어디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걸까요?
아이가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안개를 젖히고
자신의 삶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는 있을까요?
어른인 우리들은 그렇게 짧지 만은 않은 삶이
수많은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나의 행동이
나비효과가 되어 커다란 파문을 가져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피눈물 나는 후회의 순간을 아이가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게 될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지금의 선택이 온전히 미래의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아이가 그 예쁜 눈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길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