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작안 방안 열려 있는 창틈으로 모처럼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나 했더니 이내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는 커피를 부르고 커피는 재즈를 부른다. 이 세가지를 갖추고 나서야 온전히 비가 오는 날을 즐길 준비가 끝나는 것 같다. 나만의 의식이랄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복잡하게 엉켜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점점 제갈길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챙겨야하는 것과 버려야할것이 보이고 소중한 것과 대수롭지 않은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기만 했던 사랑의 시절이 끝나니 받고 있던 사랑이 눈에 들어오고, 잃어버린 것들에 애닯아 했던 마음에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들어온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걷어내니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다지도 넓었다. 내가 살아오고 있던 세상은.
나 정말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
비가 더욱 쏟아진다. 카푸치노 한잔에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음악을 얹어본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포기했으나 마음으로는 여전히 소망했던 불행한 사람들이 나왔던 영화.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더 커다란 질문을 던졌던 영화였다. 인생을 짧다고 하지 않는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기에 누구나 보이는 이기적인 욕망을 이해해주는 세상이기도 하다. 욕망에 공감할 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이다. 찰나의 감정이 영속적인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수 있을까. 오히려 찰나의 반짝거리는 감정은 현재에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닐까.
현재가 빛을 잃었다고는 하나 구름뒤에 가려진 태양처럼, 늘 존재하는 우리의 빛을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잠깐 잠깐 구름이 걷히며 드러나는 태양이 지나치게 눈이 부시듯 그 눈부심에 현혹당해 내내 함께하는 태양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실은 내 안의 반짝거림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것은 아닌지.
혼자라서 외롭고 그 만큼 자유롭지만 이 자유로운 시간에도 이 자유를 나누고 싶은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소망한다. 마음속의 외침을 꺼내어 말을 걸고 싶은 욕망에 수시로 좌절한다. 바로 이럴때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묶여있어야 언제든 손을 내밀고 말을 걸어도 나의 편에서 무엇이든 받아 줄 수 있기 때문에.
내리는 비가 반가워 설레이다 결국은 사랑으로 끝나고 마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