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기다리던 눈이 내린다. 나가서 눈을 맞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그냥 바라볼까? 고민이 된다. 나가서 눈 속에 걸어 다닌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될까? 아니면 지난 수개월 동안 그랬듯 생각에 파묻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걷기만 할까?
몹시 기다리던 것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조용한 방안에 나만 오롯이 놓여있다. 내 마음은 고요한 걸까? 억지로 눌려져 밑바닥에 가라앉은 마음은 없을까? 아니면 이제는 마음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간 걸까?
순간순간 울컥하는 마음과 마음이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나 사이에 눈이 고요하게 쌓이고 있다.
작년의 나였다면 시끌벅적하게 산책할 누군가를 원했을까? 일 년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겨우 몇 번 만나는 이 놀라운 눈의 세상을 만끽하며 삶을 찬미하고, 삶에 대한 행복한 기대감에 가슴을 들썩였을까?
창밖에 소록소록 쌓이는 저 고요한 움직임이 묘하게 나의 마음을 휘젓는다. 그러면서도 고요한 눈의 존재에 고요한 위로를 받는다.
작은 와인 한 병을 사다 창에 세워두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나에게 와인의 따듯함이 들어오는 것 같다. 이렇게 내가 한 모금, 눈이 한 모금 하며 와인의 정취를 나눈다. 일 년간 간절했던 나의 기다림에 화답이나 한 듯 내려주는 저 눈에게 건네는 한잔이다.
소란하고 거칠었던 순간들이 지나가고 텅 빈자리에 이해 안 되는 슬픔과 차분함이 찾아왔다. 수개월 동안 들렸던 아우성들이 들리지 않으니 참기 힘든 고요함이 때로는 더 큰 아우성으로 들려온다.
아직 눈이 내린다. 비는 소리로 찾아와 내 마음을 두드려 대더니, 눈이란 녀석은 그저 고요하게 내려앉으며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내 마음을 덮는다.
어떻게 할까? 나가서 저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하나?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데 이렇게 바라만 봐도 되는 걸까? 소리 없이 사방을 고요하게 만들어 버리는 눈 이건만 그 하얀 고요함 속에 답하기 힘든 갖가지 질문들이 떠다닌다. 드러난 마음이 숨을 곳이란 없다. 나는 나의 마음을 알아내야 한다.
눈이 잦아들고 있다. 이런... 나를 부르는 걸까? 외투를 입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