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전에 산책을 다녔던 골목을 찾았다.
좁은 길 양쪽으로 작고 소박한 상점들이 삐뚤삐뚤 붙어있는 골목길. 저녁 무렵 그 골목에 들어찬 노을 속을 걸으며 사람냄새 가득한 그 골목이 주는 운치를 좋아했었다. 나는 특히 그 가게들 중에서 작은 파스타집을 눈여겨보았었다. 젊은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그 가게가 눈에 뜨였던 것은, 3-4개 정도의 테이블만이 놓여있던 협소한 그곳이 넓어 보일만큼 늘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거의 매일 그 골목을 드나들던 나는 그 앞을 지나칠 때면 마음을 졸여가며 가게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장님 혼자 지키던 그 가게에 이따금 한두 명의 손님이라도 있을 라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앞을 오가며 그 가게를 들여다보는 것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의식과도 같았다.
그랬던 그 가게가 거기에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핑크빛으로 무장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차 있었다.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쏟아져내렸다. 자영업자들이 사업에 실패해서 영업을 중단하고 폐업을 하는 광경을 수도 없이 봤지만, 그 가게는 그러면 안 됐었다. 나에게 그 가게는 그렇고 그런 가게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나의 길에 놓여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기뻐했던 상대였다. 그 길을 지나다녔던 나의 시간과 생각과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유일한 대상이었다. 당시의 내가 온통 담겨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매몰차게 한순간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또 하나의 시간이 영원한 과거의 세계로 밀려났다. 복잡한 마음에 연신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그 앞을 서성였다. 새로 단장한 그 화려한 가게에서 예전 나의 가게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그 자리에 있던 그 가게를 기억하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 나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좁디좁은 골목이 무한히 팽창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꿈을 꾸었던 것일까? 노을빛 받으며 소소한 행복에 겨웠던 나를 누군가가 질투했던 건가? 아니면 그 시절에 대한 또 하나의 환상이었을까?
이렇게 또 하나의 시절이 장소에서 사라지고 시간에서 빠져나간다.
우두커니 서있던 나의 발아래에서 노을이 빠져나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