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늘 나에게 말했다. 넌 왜 매일 같은 길로만 다니냐고. 왜 항상 동네에서만 노냐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같은 길이 편하고 익숙해서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같은 장소가 주는 안정감에 늘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에게 내 물건을 하나라도 빌려주게 되면 그 물건을 못 받는 시간 동안 마음 졸이는 것이 싫어서 그냥 주어버리고 똑같은 물건을 다시 샀다. 아끼는 책은 선물을 할지언정 빌려주지 못했다. 내 물건에 대한 애착이 심한 건지 아니면 그 물건들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집착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늘 내 주변의 무언가를 떠나 보내는 일에 서투른 사람이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가 군대를 가게 돼서 살던 집에서 떠나는 날이었다. 3년간 혼자 자취하며 살던 그 아이의 짐을 함께 싸고 방을 정리하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제자이면서 친구였고 동료였던 그 아이의 이삿짐을 싸는 것이 마치 나의 일부를 정리해서 떠나 보내는 마음이었다. 20대의 친구들에게는 그저 이사일 뿐이었겠지 만 나에게 이사는 일 년간 그 공간을 채워주었던 많은 일들 과의 이별 뿐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나와의 이별이기도 했기에 말할 수 없이 헛헛한 마음이 밀려왔다.
어쩌다 보니 최근의 나는 많은 것들과 이별하며 살고 있다. 삶이란 원래 이렇게 떠나 보내는 일의 연속인가 싶을 정도로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며 내 삶이 나를 자꾸만 새로운 곳으로 밀어 넣고 있다. 늘 다니던 약국이 없어지고 단골이었던 네일숍의 아티스트가 그만두고 존경하고 의지했던 부장님들이 퇴임을 하셨다. 아침 출근길에 들려서 향기로운 커피에 일상의 고민을 내려놓고 마음을 나누던 이가 사라진 그 공간은 여전한데 다만 그만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없는 그 자리를 오가며 몇 번이고 바라보는 내가 애처롭지만 현실은 나의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엄하게 나의 감상을 짓밟는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떠나고 늘 그랬듯이 나만 남아있는 기분이다.
어린 시절 읽던 책이 아직도 침대 머리맡에 꽂혀 있고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인형들이 방 한 구석에 놓여있다. 책의 앞장에 책을 구매했던 날짜를 기록하여 언제든지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이고, 핸드폰의 사진을 수시로 열어보며 살아온 궤적을 확인하는 나이다. 나는 나를 기억하고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담아두고 잊지 않는 사람인데 이런 나에게 이별은 수시로 예고 없이 너무나 이기적으로 찾아와 아무런 감정 없이 나를 휘젓고 사라진다. 말하고 싶다. 모두에게. 나는 지나치게 여린 사람이라고. 작은 이별에도 몇 날 며칠을 마음 아파하며 잠을 못 자는 인간이라고.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떠나는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고. 그런데도 괜찮은 척하며 대범하게 이별을 맞이하는 것뿐이라고.
모든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나만이 뒤에 두고 온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가끔은 너무나 마음이 외로워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멋지게 나를 탈바꿈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았다. 앞으로 나아간 만큼 뒤로 밀려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꿈, 젊었던 부모님의 모습, 함께 뛰놀던 동생들,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이제는 모두 과거의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다.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꿈꾸고 과거를 추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같은 길을 다니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버겁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되는 걸까.
자취를 끝내고 입대를 앞둔 그 녀석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다치지 않고 무사히 군생활 잘하고 오기를 기도한다. 그 녀석이 돌아올 때쯤 이면 내 마음도 조금은 자라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