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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건네는 위로

by 무비 에세이스트 J

한밤의 산책을 나선다. 아침의 산책이 주는 생동감도 없고 오후의 산책이 주는 느긋함도 없지만 한밤의 산책에는 그윽한 사색의 자유가 주어진다. 골목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빛에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신비로움을 발견한다. 그 골목길을 건너편에서 바라보며 감히 내가 저곳을 들어갈 수 있으려나 하는 경외심이 든다. 사람의 발길과 목소리가 채웠을 골목길에 가로등 불빛이 가득 차있고 간간이 그곳을 지나가는 한 두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고적함이 메아리되어 빠져 나간다.


좀 더 과감하게 대로로 나서본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넓은 도로변을 따라 걷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을 갖게 한다. 나의 그림자와 동행했던 다소 외로웠던 골목길 산책과는 달리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에 갑자기 기운이 나는 듯하다. 그렇게 차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걷다 보면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몹시 적막해지는 드문 순간이 온다. 나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텅 빈 도로를 바라본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다 보면 두 주인공이 아주 조용한 주방에서 처음으로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인 로버트가 여자 주인공인 프란체스카에게 말한다. "고요함이 들린다고." 수프가 끓고 다른 음식이 조리되고 있는 소리 사이에 정말 고요함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그렇게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순간을 짚어내는 그에게 프란체스카는 끌리게 된다. 나 역시 나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고요함의 소리를 듣는다. 순간 나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다.


언제부터 나는 내 곁의 고요함을 듣지 못하게 된 걸까?



이윽고 차 소리가 나를 다시 내 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다른 세상에 한 발을 딛고 서있는 기분을 느낀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고독의 깊이에 도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내면의 나와 마주하여 대화를 하는 일에 나는 아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내면의 나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핑계로 감정과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어린 아이다. 조금이라도 대화를 해볼라 치면 사정없이 투정을 부리고 제멋대로 구는 어린아이. 고독이 주는 즐거움을 알기까지 나는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서니 가로등이 나를 반긴다. 그 불빛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내 마음의 외로움 때문이겠지. 가로등을 향해 걸으며 마음의 빗장이 느슨해 짐을 느낀다.


우리 집 대문이 코앞이다. 이제 나의 밤을 뒤로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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