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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 에세이스트 J Aug 31. 2023

소리 되지 않은 언어, 침묵의 공명

영화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 2021)

저 멀리서 누군가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에 짜증이 뒤섞일 즈음 카메라는 풀숲에 몸을 숨기고 누워있는 작고 희미한 사람의 형체를 비춘다. 이윽고 누군가가 풀밭에서 내키지 않은 듯 서서히 몸짓을 일으킨다. 작은 소녀다. 소녀는 낡아빠진 샌들에 더러운 원피스를 입고 터덜터덜 집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소녀는 가정과 학교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모두와 있지만 모두와 있지 않다. 더듬거리며 읽는 글, 꼭 다문 입. 강요당한 침묵 속에 표정 없이 살던 소녀의 어둡고 흐릿한 세계는 어느 더운 날 부모에 의해 통째로 들어 올려져 낯선 세계에 놓인다. 소녀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다. 



영화 <말없는 소녀>는 아일랜드 작가인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Foster, 2010)를 원작으로 한 아일랜드 영화이다. 아일랜드의 보석이라 불리는 클레어 키건의 원작에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이는 주인공인 코오트다. 작가는 작품에서 어린 소녀의 관찰과 생각만으로 독자에게 충분히 생각할 여지와 시간을 제공한다. 감독인 콤 바이레아드는 이러한 원작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소녀의 시선에 맞추어 화면을 비추어 줄 뿐 관객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친절한 배려를 최대한 자제했고, 그리하여 관객은 빼어난 원작이 그대로 영상화된 듯한 빼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 언어의 한계는 세상의 한계다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집에 보내지기 전 주인공 코오트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천덕꾸러기에 뒤쳐진 아이였다. 주변 사람들의 억압과 조롱, 무관심에 놓여져 있던 코오트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갔다. 침묵과 소통의 단절은 이러한 상황에서 코오트가 선택한 최선의 자기 방어책이었을는지는 모르지만 입을 열지 않은 그 순간부터 그녀의 언어는 정체되어 버린다. 친척집에 간 첫날부터 이런 코오트의 상태를 눈치챈 킨셀라 아줌마는 코오트에게 똑바로 된 언어를 사용하게 하고 킨셀라 아저씨는 글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코오트에게 언어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20세기의 철학자 중에서도 특히 언어철학을 집중적으로 다룬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행위를 하는 순간에 세계를 인식한다’고 한다. 또한 그는 명료한 언어적 표현에 의해서만 명료한 인식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이것을 코오트에게 대입해 본다면 코오트가 친척부부에 의해 언어를 재정립했다는 것은 그녀가 ‘새롭게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며, 그 이전까지 자신이 보고도 이해할 수 없었거나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변화의 현상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코오트가 언어를 재정립하고 확장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세계를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섰다는 것은 결국 그녀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고 코오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언어를 통해 발을 디뎠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서로의 결핍에 맞물리다


코오트를 맡아준 킨셀라 부부는 오래전 비극적인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아들의 옷처럼 그들의 슬픔은 현존한다. 사랑받을 이의 부재는 그들의 삶에 거대하고 깊은 결핍을 낳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불완전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코오트는 엄마와 아빠, 거기에 언니와 동생까지 있는 대가족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는 코오트는 무리에서 소외되어 있다. 사랑을 주는 이가 없는 코오트의 삶 역시 결핍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한 점에서 마주친 킨셀라 부부와 코오트의 만남은 이렇게 결핍과 결핍의 부딪힘이기도 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는 의도치 않은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결핍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된다. 크고 작은 우리의 결핍, 모양도 제 각각인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희망이라고는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커먼 터널로 우리를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 우리의 결핍은 누군가의 존재, 또 다른 결핍을 가진 타인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나의 결핍과 그의 결핍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보완재가 되어 드디어 터널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쩌면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채워줄 결핍을 지닌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3. 침묵을 택하다


킨셀라 부부와 사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코오트는 어느 날 마을의 한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오는 길에 수다스러운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킨셀라 부부의 비밀, 즉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된다. 코오트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코오트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에 킨셀라 아저씨는 코오트를 바닷가로 데리고 나가서 침묵할 기회를 놓치면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는 말을 해준다. 절대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날 밤 이후 코오트는 때로 말보다 훨씬 값질 수 있는 침묵에 대해 알게 된다. 이제 코오트는 침묵을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고자 침묵을 택해야만 했던 소녀는 어느 여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준 타인에 의해 침묵이 자신을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화즉시 산화되는 말보다 머금어 삼킨 말이 때로 타인을 더 깊게 더 오래 안아줄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내 품에서 위안을 받고 있는 타인의 온기가 이제는 그의 침묵을 타고 내게로 전해져 오게 된다. 소리 되지 않은 말, 침묵 속에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토닥이며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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