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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C Nov 04. 2023

내가 좋아하는 기내식

군대에서의 경력은 흔히 '짬밥'이라고 하고 수영 선수들은 그걸 '물밥'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승무원 경력에 관한 은어나 속어는 딱히 없다. 근데 있으면 재밌을 것 같다. 짬밥 대신 비행기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내식? 아무튼 승무원들이 그런 용어를 쓴다면 갤리(기내 주방)는 이런 분위기가 될 것 같다.


"김영희 씨(가명) 비행기밥 먹은 지가 몇 년짼데 밀체크를 헷갈리면 어떡해요?" (승객용 기내식을 meal이라고 한다)

"김사무장, 기내식 거꾸로 먹었어? 일을 왜 그 모양으로 하는 거지?"

"기내식 좀 먹었다고 이젠 비행 편한가 보네. 어디 한번 비행 좀 꼬이게 해 줄까?

"우리 팀 막내는 기내식도 얼마 안 된 친구가 일 하는 거만 보면 CP인 줄 알겠어 허허허"(CP는 Cheif Purser 최고위직 승무원이다)

"아유 팀장님이 참으세요. 요즘 애들이 뭘 알겠어요. 저희 때처럼 언니들 속옷을 빨아봤겠어요? 비빔밥에 들어갈 참기름 짜러 방앗간을 가봤겠어요? 비행 편하니까 기내식 다 허투루 먹는데 어쩌겠어요."


대한항공 기내식을 대표하는 메뉴 비빔밥을 그 자리에 넣어도 괜찮겠지만 최근 한식 메뉴가 다양해져서 좀 애매한 감이 있다. 최근에는 묵밥도 나오고, 곤드레밥, 비빔국수 그리고 아시아나 메뉴로 유명했던 쌈밥까지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한식 메뉴는 묵밥이다. 곤드레밥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남들 입에도 맛있는 법. '물림상'이라고 해서 조선시대에는 왕이 먹다 남은 음식을 아랫사람들이 먹었다. 영화 <광해>에도 나오는 장면인데 배우 이병헌이 그 많은 수라상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바람에 궁인들이 한동안 배를 골은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다. 승무원들 처지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간 승무원 식사가 별도로 실리지 않았다. 승객들 기내식을 넉넉히 싣는 대신 여분의 기내식으로 기장들과 승무원들의 끼니를 해결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크루(crew) 전용 식사가 따로 실릴 예정이다. 앞으로는 내가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유 니들이 뭘 알겠니? 우리처럼 밀서비스 하고 남는 기내식을 먹어봤겠니? 아니면 북극 지날 때 잠깐 비상 도어 열고 얼음 떠다 팥빙수를 만들어봤겠니?"


당연히 농담이다. 비상 도어 열면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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