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오너(PO)와 프로덕트 매니저(PM)는 같은 거 아니야?
트렌드에 민감한 IT 산업 내 PO라는 직업이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PO 관련 서적과 교육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고 있는데, 아마 이는 쿠팡과 토스 같은 국내 여러 유니콘 기업들이 PO의 역할이 서비스 성공에 필수적으로 기여했다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IT 업계에 종사 중인 지인들을 만나면 PO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구직 중일 때 처음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업을 알았다. 실리콘 밸리의 창업자 1인이 꽤나 큰 액수의 투자를 받고 팀을 꾸릴 때 프로덕트 매니저를 찾고 있었고, 나는 그 회사와 인터뷰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회사가 IT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기술 회사가 아니고 물리적인 상품, 숙취 음료를 개발하는 회사였다는 것이다. 즉, 적어도 IT 산업에서 PO가 각광 받기 시작한 최근까지 나는 프로덕트 오너란 막연히 물리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회사에 필요한 역할 정도로 간주했고, 그 역할은 브랜드 매니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관성 있는 브랜드 이미지 유지를 위해 브랜드 매니저는 의사 결정을 하듯 프로덕트 오너는 일관성 있는 상품 품질 유지를 위해 의사 결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런 나의 추측은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덕트 오너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바탕이었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많은 IT 업계 종사자들은 PO와 PM의 차이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지 못 한다.
라인에서 개발자로 근무 중인 내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프로덕트 오너라는 단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역하면 프로덕트를 소유하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프로덕트 오너와 협업하는 다른 직군들을 프로덕트 오너의 가설과 목표를 실현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느낌이 들거든. 프로덕트를 독점하는 듯한 거창한 이름보다는 다양한 직무에 걸친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조율한다는 점에서 기획자,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이름이 더 친근감 있는 것 같아.
실제로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과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프로덕트 오너보다는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의 Job Descriptions를 읽어 봐도 국내 기업 쿠팡이 PO라고 정의하는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쿠팡이 PO를 정의한 내용이다. ('쿠팡 채용'에서 발췌함.)
PO를 Mini-CEO로 지칭하는 것 역시 다른 직군들에게 반감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라인 개발자인 지인은 Owner라는 단어에서부터 기분 나빠하는데, CEO라는 단어와 떼고 상상할래야 상상할 수 없는 위계와 권한은 다른 직군들로 하여금 PO의 의사 결정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PO라는 역할이 제 능력을 발휘하려면 애자일(Agile)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애자일에서 말하는 '조직 내 역할로 평등한 팀'과 Mini-CEO로서 PO가 갖는 의사 결정권 사이의 합의를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PO에게 책임은 있어도 권한은 없다.
복잡한 역학 관계처럼 들리지만 이것이 PO가 마주한 현실이다. CEO는 인사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일을 지시할 수 있고 자신의 우위를 활용해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PO는 지시할 수 없고 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설득해야 한다. 때문에 PO는 자신의 실력을 끊임 없이 증명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존중 받아야 하며, 책임지는 프로덕트에 관해서는 가장 많은 걸 알고 가장 많이 고민해야 한다. 즉, PO는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등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만 고객 중심적 사고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덕트 개선을 위해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며, 내려진 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많은 직장인들이 의사 결정권을 꿈꾸지만 PO가 짊어지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생각하면 이는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고 내릴 수 있는 P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도,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도 아니고 바로 용기야!
한 스타트업에서 PO 역할을 하고 있는 지인이 말했다. 모두의 동의를 얻지 못 하는 것이 두려워 고객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목적 있는 데이터와 날카로운 인사이트도 무용지물이 되어 제 빛을 발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결국 PO는 집요하고(집요해야 끝까지 모두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설득을 반복할 테니까) 호기심이 많으며(데이터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다양한 결과를 상상해볼 줄 아는) '모 아니면 도'라고 흔쾌히 외칠 수 있는, 모험심 있는 사람을 위한 자리이다.
이는 '서비스 기획, 사업 개발, BA(Business Analyst)는 각기 어떻게 다른가?'와 같이 뚜렷한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나, 굳이 PO와 PM을 구분한다면 PO는 전략가, PM은 실행자라고 할 수 있겠다. PO가 프로덕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관 조직 간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사업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설을 설정, 검증하며 디자인과 개발 요구 사항을 정의하는 사람이라면, PM은 일정을 조율하고 개발 진행 과정을 세밀하게 살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간략히 말해, PO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요구 사항을 정의한다면, PM은 PO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세부적으로 실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PO라는 역할이 한낱 IT의 트렌드로 잠시 머물렀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지, 혹은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에 종속될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MBA 학위 소위자들이 너도 나도 달려드는 차세대 유망 직업이 될지 참 궁금하다. 내게 PO라는 직업은 동료들에게 신뢰 받고 반복되는 열띤 토론과 설득의 과정에서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며, 그 결정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꽤 매력적이다. 만약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나는 인생에 한 번쯤 PO를 해보고 싶다. 그 경험이 모 아니면 도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