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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May 12. 2017

어느 봄날

아스러지는 너를 보았다


오래 지난 것이 좋다.
하늘이든 사람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말이다.
쨍하고 진한 열기와 열정, 생생함도 좋지만 아스러지는 것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나는 무척이나 좋다.
오래된 것에는 온화하고 고요하며 사려깊은 지혜로움이 느껴진다. 흉내내고 싶어도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깊이에 때때로 경외감이 들기도 하다.

여느때처럼 길을 걷다 지고 있는 꽃잎들을 보았다.
어느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을 꽃잎들은 곧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꼬부라지고 색이 바라고 쪼그라들어 주름투성이었다.
 반면 생을 다한 그들에게서 열렬히 뽐내온 그간의 화려함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봉우리가 터지기 직전의 설레임을 경험해보았을테고 비바람에 두려움을 겪어보았을테다. 또한 한없이 적막한 어둠속에서 철저한 외로움을 느껴보았을테고 누군가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려 보기도 했을테다.
때로는 기쁘고 즐거웠을테고 때로는 아프고 슬펐을거다. 그렇게 불행하거나 행복했겠지. 지는 꽃잎에게서 자신의 온 생을 다 내어내고 세상의 마지막을 담담히 맞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오래되고 지는 것에는 사실 슬퍼할 것이 없다. 오히려 아름답고 경탄스러워 전율이 일어 눈물이 나기도 하다. 당연히 찬사를 보내 마땅한 일이다.


오늘 길가에 지는 꽃잎을 보고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나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여 담백하게 드러낼 줄 아는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 투성이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래되고 지는 것에 담대할테다. 그리고 그런 괜찮은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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