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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쁘다 Mar 09. 2016

아이들의 천국에선

[그들만의 세상]


수업 중 한 6세 여자아이가 8세 언니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우리 천국 갈 때 클레이* 가져가자"


그에 8세 언니는 하던 작업을 하며 명랑하게 답한다"어! 그래!"


천국이란 말에 순간 벌컥이는 마음이 든 나는 6세 아이에게 물었다. "왜 천국에 클레이를 가져 가려하는데?"


아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며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천국 가면 심심하잖아요. 클레이 가져가서 놀려고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물었다. 한 7세 아이는 단호히 천국엔 그런 걸 가져갈 수 없어요, 했다. 다른 아이는 엄마를 데려간다고 했고 어떤 아이는 가족사진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최초의 화두를 던진 아이가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에 나는 실제 닥친 일인마냥 고심히 생각해보았다. 웬일인지 정말 천국은 심심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책을 가져가야 하나, 전자기기는 안되겠지, 한 가지만 가져가야 하나, 나는 잡생각이 많은 뻔한 어른들처럼 쓸데없는 계산을 하며 나름 합리적인 답을 내었다. "음.. 선생님은 그동안 찍은 사진이랑 제일 재미있었던 책 가져갈래" 아이들과 나는 너도 나도 이것도 저것도 가져가고 이거는 안되고 저건 되고하며 천국에 관하여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이에 질문 자체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아이마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내가 나와 같은 잡생각이 많은 뻔한 어른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과연 나를 눈먼자 취급 없이 순순히 답해 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와 함께 있는 어린 꼬꼬마 학생들은 내게 종종 전혀 생각지도 못할 질문을 해대곤 한다.


가령, 흰색 도화지에 흰색 크레파스가 나오지 않은 이유, 핑크색이 핑크색인 이유, 혹은 저녁이 깜깜한 이유나 저녁이 오는 이유.


아이들은 시종일관 내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뒤집어 질문함으로써 나를 뒤집어 놓곤 한다.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진 순백의 순수함을 가진 아이들. 이 아이들에겐 어떤 이상도, 관념도, 인과론도,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무(無)에서 나왔듯이 아이들의 사고는 무(無), 그 자체이다.


보통 인간의 뇌는 경험을 통해 기억을 축적한다고 한다. 반복된 경험이나 특별했던 경험은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이 많을수록 우리의 행보를 보다 합리적으로 이끌어준다고 믿고 있다. 그 합리적이라 함은 삶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그래서 이치에 맞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험이 많은 우리 어른들은 그래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합당한 이치는 누가 만들고 누가 가늠하는 것일까. 누구나 다가 생각하는 그 행보가 이치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저 무지한 아이들처럼 다시 순수해질 수 있을까. 다시 세상을 뒤집을 만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까.


아이들처럼 사고하기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왜?"라고 반문해보면 된다. 반문에 그치지 말고 스스로 답해보며 세상이 주었던 뻔한 답을 다시 찾아보면 어떨까. 당연함을 당연시하지 않는 아이들을 경외하며 세상에 묵은 때를 벗기고자 오늘도 난 아이들과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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