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쁘다 Dec 09. 2019

엄마의 외출

[진정한 혼시 보내기]


 하루는 아이 둘을 키우는 친한 친구가 정말 오랜만에 혼시를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의 업무 특성상 늘 12시 퇴근에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가족과의 시간도 같이 보내기 힘든 상황에 친구의 혼시는 더욱이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친구는 또 언제 생기지 모르는 소중한 혼시가 주어졌음에도 만날 사람이, 갈 곳이 없다고 한탄했다.


 생초보 엄마인 내가 서툰 육아 살림으로 지금보다도 더 고군분투할 때. 좀처럼 적응되지 않은 일상에서 우울감만 커져가던 나날이 떠올랐다. 남편은 출산 후 몇 개월을 집에서만 있는 나를 어떻게든 바깥으로 내보려고 동생들에게 몰래 연락을 하여 강제 외출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시간만 생긴다면 그냥 집에서 푸욱 쉬는 것만 하고 싶었다. 외출하려고 탈복 하는 것 마저 피로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번 외출을 하고 나니 두 번, 세 번의 외출이 지친 육아, 살림에 큰 환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 피곤하더라도 남편의 애절한 눈빛을 뒤로하고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이라도 몇 시간이라도 꼬박 혼시를 보내려 외출을 하고 있다.


 나도 초반엔 친구처럼 그랬다. 혼시가 생겼는데도 만날 사람이(더 정확히는 만나고픈 사람이) 갈 곳이(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늘 친구들이나 동생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같이 쇼핑을 하며 보내왔는데 몸에 밴 습관은 시간을 같이 보낼 누군가를 찾기 바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연락을 하여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불러내어 시간을 보냈, 아니 때웠던 시간들.  바깥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기분전환은 되었을지언정 진정한 휴식은 되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더 지친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의 헛헛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시간이 비는 친구를 찾는 일을 비로소 줄여나갈 수 있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조용한 방구석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침대에 누어 티브이 채널이나 돌려대며 뒹굴뒹굴, 귤이나 과자,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고 다시 뒹굴뒹굴 대는 것이었다.(여전히 제일 하고 싶은 것)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아도 누구와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순수 무결한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던 것이다.


혼자 먹는 음식, 혼자 보는 영화, 혼자 하는 쇼핑, 혼자 가는 드라이브, 혼자 쐬는 바람, 혼자 듣는 강의...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고 잘하고 있는 것들이다. 원래도 잘했지만 혼자만의 호캉스까지 누리고 나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설레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는 잠을 못 자던 나였는데 처음으로 홀로 하룻밤을 보낸 호캉스는 축적된 피로를 훠이 날려주었다. 그렇게 진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진정한 기분전환과 휴식이 되어 생기 있는 에너지가 쏫는 것이 느껴진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환기를 시켜 고여있던 집안 공기를 빼내고 좋은 공기로 전환시켜주어야 한단다.

아무리 다정하고 좋은 엄마더라도 고됨이 쌓이고 고이다 보면 초미세먼지가 흉부 깊이 쌓이듯이 정신이 피폐해져 나를 갉아먹을 수도 있다.

 육아 살림에 찌든 엄마들이 진정한 혼시가 필요한 시점. 만날 사람이 없더라도 갈 곳이 없더라도 지금 당장 나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초록초록한 이슬 한 방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