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 편이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내가 왕년에 말이야~.”
“그 나이가 좋은 줄 알아라~.”
나이에 관한 말들을 들여다보면 젊음에 대한 찬양과 나이 듦에 대한 아쉬움이 대부분이다. 이미 전성기는 지나갔다는 한탄. 한때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밖에도 ‘서른’에 대한 책들과 노래가 넘쳐났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때는 과연 젊음이 펄떡이는 20대일까? 서른이면 정말 잔치는 끝난 걸까? 서른 살 즈음에는 마치 인생의 큰 문턱을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십을 먹고 보니 덤덤하게 ‘서른쯤이야’라고 말하게 된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를 고백하자면, 인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젊었고 아주 많이 미숙했다. 잔치가 끝나기는커녕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잔치의 날들은 여전히 창창하게 남아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배낭여행이 20, 30대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물론 이삼십 대의 배낭여행자가 제일 많은 건 사실이다. 거기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젊다고 해서 모두 여행을 능숙하게 하는 건 아니라는 것. 내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마흔에도 나보다 훨씬 어설픈, 그러나 젊은 여행자를 적잖이 만났다. 준비 없이 그저 젊음 하나만을 믿고 나온 여행자들이 수두룩했다. 가끔은 내가 그들에게 이것저것 유용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배낭여행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가 인기를 얻기 이전부터 나는 중년 이상의 배낭여행자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당신이 20대라면 나는 “역시 여행은 기운이 팔팔한 20대에 해야 제맛이지.”라고 말하겠다. 당신이 50대라면 나는 또 “반평생쯤 살아본 50대가 여행에도 최적기야.”라고 말하겠다. 즉 여행은 언제나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다. 당신이 몇 살이든 상관이 없다. 여행을 가고 싶은 때라면 언제든지 ‘그때의 지금’ 가는 게 제일 좋다. 우리는 지나간 20대를 지금 살 수가 없고, 앞으로 닥칠 50대를 지금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때란 오직 이 순간, ‘지금’밖에 없으니까.
과연 몇 살부터 몇 살까지를 중년으로 보아야 할까? 이전까지는 주로 40대에서 50대까지를 중년으로 여겼다. 사전을 보면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되어 있다. 주변에 물어보니 ‘40대 중반에서 60대까지’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사전의 내용이 실제 인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아무래도 사전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중년은 참 좋은 나이다.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나이다. ‘우리의 지금’은 중년이니까. 이런 이유 외에도 중년이 가지는 장점은 많다. 일단 중년을 조금 세분화한다면 다양한 층이 존재한다. 40대 초반이라면 초등학생 자녀, 40대 중반쯤 되면 청소년기 자녀, 50대 이상이라면 스무 살 이상의 성인 자녀가 있을 것이다(이건 일반적인 구분이고 개별적인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 시기마다 장점이 있으므로 이미 지나간 날을 아쉬워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날도 부러워도 말고 그 순간순간을 마음껏 누리시라.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곧 부모에게서 독립할 날이 온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데리고 다니는 맛이 있다. 나는 아들이 서너 살 때부터 나들이를 즐겨 다녔다. 산이나 들로 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놀러 다녔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여행에 데리고 가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금방 다 잊어버린다.
그러나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그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남는다.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했던 느낌, 몸에 새겨진 그 느낌은 나중에 어려운 시기를 만났을 때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는 힘이 되어줄 터이다. 제발 아이에게 수지타산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밀지는 말자. 솔직히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경제적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면 또 그것대로 든든한 여행 파트너가 된다. 나는 열여섯 살 아들과 6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아이는 사진과 의사소통을 거뜬히 도맡았다. 이 나이 대 아이들은 얼마든지 자기 몫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믿고 맡겨보자. 책 제목에도 있듯이 ‘믿는 만큼 아이들은 자란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된 이후로는 나 홀로 여행하는 재미에 빠졌다. 아이도 독립, 나도 독립이었다. 나는 이때를 ‘진정한 중년의 시기’라고 본다. 이쯤 되면 지난했던 육아가 끝난다. 엄마로서의 긴 세월을 졸업하는 셈이다. 인생에서의 큰 숙제 하나를 마쳤다. 이제는 가족보다 자신을 돌아봐도 괜찮은 시기다. 엄마들에게 드디어 시간과 여유가 생겼다! 더불어 경험과 배짱까지 장착했다. 여행을 시작하기에 딱 좋지 아니한가.
엄마들에게만 이런 시절이 오는 것은 아니다. 중년에 들어선 모든 이에게 똑같이 반환점이 찾아온다. 인생의 절반을 달려온 우리들, 그동안 참말로 수고가 많았다. “이제 전반전 끝!”이라고 외친 뒤, 쉼표를 찍을 시간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지, 나머지 인생의 반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 볼 것인지, 이제라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쉬는 시간에 차분히 돌아봐야 하지 않겠나. 그 시간을 보내기에는 역시 여행이 제격이다.
게다가 요즘은 인생이 많이 길어졌다. 이른바 100세 시대다. 60대까지 중년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듯이 요즘 60대는 노인으로 치지 않는다. 70대가 되어도 여전히 젊은 노인 축에 든다. 당신이 40대든 50대든 지금 막 여행을 시작해도 최소 20년 이상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나이에 무슨 배낭여행이야?”라고 한다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생각이다. 무언가를 20년, 30년 동안 할 수 있다면 그건 결코 늦은 게 아니다.
100세 시대의 40, 50대는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열정, 자신감, 에너지에 지혜로움과 여유까지 더해진 것이 우리 시대 중년, 아니 후기 청년이다.
(송은주, < 4050 후기 청년> 중에서)
송은주 씨는 100세 시대의 중년에게 ‘후기 청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인생의 중반기는 삶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된 청년기라는 주장이다.
강연가 김미경 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20대와 50대의 모습이 너무 닮아 있어요. 뭐가 닮았는지 아세요? 20대는 하루 종일 자기 시간 다 쓰죠. 50대도 애들이 다 커서 하루 종일 내 시간이에요. 20대는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죠. 50대도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환경과 자격이 됩니다. 그래서 50이 청춘이라는 거예요. 누구 엄마로부터 온전히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 됩니다. 20대에 못 한 꿈 다 50대에 소환해 오세요. 그래서 진정한 청춘을 꼭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김미경의 있잖아, “50대는 두 번째 청춘이다” 중에서)
그녀는 중년의 시기가 그동안 포기했던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중년에게 있어 체력은 젊은이들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경험과 세월의 힘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서 아는 것이란 단순히 지식만이 아니라 경험, 지혜, 세월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이와 경험, 지혜가 항상 비례하지는 않지만, 겪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만 해도 젊을 때는 미처 보지 못하는 것, 느끼지 못하는 것을 지금은 훨씬 잘 알게 되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마흔 살보다 지금 쉰 하나에 새롭게 가슴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이 많다고 걱정할 것 없다. 이쯤에서 비밀을 하나 폭로하자면, ‘시간은 갈수록 우리 편이다.’
하지만 불공평하게도 누구나 100세 시대를 누리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인생이 아주 짧을 수도 있으니. 가령 나 같은 암 경험자 혹은 다른 큰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장 1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갑자기 병이 재발하거나 전이될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인생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단지 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사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세상을 등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1년 일지 10년 일지 30년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하고 싶은 걸 더 이상은 제쳐두지 마시라.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이 미처 해보지 못한 일이란다. 이래저래 여행을 미루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