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기차 여행

동호이

by 소율


일명 ‘슬리핑 버스’가 나는 맘에 들지 않았다.

다른 여행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하지만 내 눈에는 감옥과 다를 바 없었다. 침대 의자를 빽빽하게 채워 넣은 대형 버스, 그것도 위아래 2층으로. 시야가 사방으로 차단된다. 그 안에서 꼼짝달싹 못 하고 누워서 간다는 게 어쩐지 사육당하는 느낌이란 말이지. 버스 안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낮에만 이동하는 나에게 슬리핑 버스란 무용지물. 나는 가능하면 기차를 탔다.


동허이로 가는 열차,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네 명이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았다. 호텔을 통해 예약한 터라 이런 자리인 줄은 몰랐네. 그래서 싫었냐고? 노노, 그 반대였다. 마주 앉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대화할 수 있으니, 나에겐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4시간 20분 동안 입 다물고 있으면 얼마나 심심하겠어.


맞은편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앉았다. 한 명은 줄무늬 반팔 와이셔츠를, 또 한 명은 쨍한 파란색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었다. 그런데 파란 와이셔츠 쪽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 여행 가방을 위쪽 선반에 덜렁 올려주는 게 아닌가, 부탁도 안 했거늘. 감사를 표하는 나에게 그는 ‘이 정도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짜 신사’란 행동으로 말한다는 듯.


두 사람 모두 서글서글한 웃음을 잔뜩 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훤히 드러나는 호기심과 선의. 아, 저런 얼굴은 내가 좋아하는 표정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저런 눈빛 앞에서 나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여행자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으리. 우리 셋이 곧바로 말을 트는 건 당연하다고 할밖에. 그들이 “한꿕, 한꿕?”이라고 묻길래 나도 열렬히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며 “한꿕, 한꿕!”이라고 대답했다. 그 외에는 베트남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번역 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일행이 있는지, 혼자 가는지’를 궁금해했다. 차려입은 와이셔츠가 어울리지 않게도 두 남자의 손마디는 굵고 거칠었다. 오랜 세월 육체노동을 해온 것을 증명하는 정직한 손 .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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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와이셔츠 쪽이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굵은 손가락에 어울리는 굵은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고생한 자신의 손가락에 이 정도의 사치는 허락한다는 느낌이랄까. 여기까지는 그저 순박한 시골 아저씨려니 했다. 그러나 같잖은 선입견은 금세 무너져 버렸다. 핸드폰을 그리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다니. 그는 기차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지도를 띄워 설명해주었다. 물론 베트남 말은 몰랐지만, 이해하는 데에 지장은 없었다. 다음에는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자신의 집과 가족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을 이리저리 옮기고 크기를 늘렸다 줄였다 자유자재였다. 그는 자신의 구형 핸드폰으로도 모든 기능을 살뜰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최신 폰을 가지고도 그 많은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나보다 훨씬 세련된 사용자였다.


대체로 듣는 편이었던 줄무늬 쪽 남자가 구글 번역에 질문을 띄웠다. 이번에는 내가 말할 차례야, 하는 얼굴이었다. 번역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가 얼마나 되냐’는 물음이었다. 한국이 잘 산다지만 베트남 역시 이제는 살 만해졌다, 하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노동자다운 정직하고 적나라한 궁금증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곤란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대충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가 아닐까? 하지만 한국과 베트남의 물가 차이가 얼마나 심한데(베트남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는 30만 원 전후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니 그의 자존심을 상처 낼 것 같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난감했다. 결국은 잘 모르겠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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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점심시간인지 주변 승객들이 미리 준비해온 음식을 주섬주섬 꺼냈다. 아까 기차역에서 딱히 먹을거리를 파는 걸 보지 못했는데, 다들 어디서 사 왔을까. 현지인들만 아는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었다. 기차라면 당연히 식당칸이 있을 테니. 식당칸을 찾아가는 도중에 ‘딱딱한 좌석 칸(Hard seat)’이 나왔다. 이야, ‘딱딱한’이라는 형용사가 이렇게 정직하게 표현될 줄이야. 말 그대로 딱.딱.한.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였다. 그것도 90도로 꺾어진 나무 벤치. 나는 기차를 탈 때마다 푹신한 좌석 칸(Soft seat) 표를 샀기에 ‘Hard seat’은 처음 보았다. 울거나 떠들면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분명 엉덩이가 아픈 얼굴로 기대앉은 승객들, 선반 위는 물론이고 바닥에까지 놓인 짐들. 그리고 떠들썩한 분위기. 이곳이야말로 ‘서민, 삶의 현장’이었다. 오 재밌겠는걸? 장거리 말고 두어 시간 정도라면 탈만 하겠다. 머릿속 수첩에 ‘언젠가 Hard seat 체험!’이라고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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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칸은 한산했다. 승객들은 대개 식당칸을 이용하지 않는 데다, 일찍 점심을 먹는 현지인들이 한바탕 지나간 후였으리라. 적갈색 나무 식탁과 의자 세트. 역시 정직한 90도 의자다. 내가 자리에 앉자 직원이 연두색 플라스틱 식판을 들고 왔다. 흰밥과 멀건 국과 양배추 볶음, 돼지갈비 튀김 두세 점. 꾸밈없이 정직한 메뉴로군. 거리에서라면 2만 동이겠지만 여기서는 4만 동. 기차 밥은 비싸니까. 시장이 반찬이라 나는 맛있게 싹싹 비웠다.


신사들과 핸드폰 필담을 나누느라 4시간 20분쯤이야 훌쩍 흘러갔다. 그들에게서 나는 베트남 생존 어를 여러 개 배웠다.

“탓응 언(맛있어요)” “젯 똣(아주 좋아요)” “반 뜨 떼에(당신은 친절합니다)” “땀 삐엣(안녕히 가세요)”

이 말들은 두 남자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처음 베트남에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본적인 말 세 가지를 배웠더랬다. 뒷자리에 앉은 베트남 아가씨가 가르쳐 주었다.

“신 짜오(안녕하세요?)” “깜 언(감사합니다)” “씬 로이(미안합니다)”

합이 일곱 문장으로 베트남 여행 회화 완성!


‘혼자여도 혼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 기차 여행의 특별함이다. 일행이 없어도 주변의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설령 소심해서 말을 걸지 못해도 출발역에서 도착역까지 창밖의 풍경이 함께한다. 대화를 못 할지언정 눈이라도 호강하면 된 거지. 기차가 역에 잠시 멈출 때마다 간식을 파는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심심치 않은 구경거리다. 허리가 쑤시면 산책 삼아 다른 칸에 다녀올 수도 있다. 미처 먹을 걸 준비하지 못했어도 식당칸에서 배를 채울 수 있다. 여행자들이여, 슬리핑 버스의 감옥 같은 편안함보다는 눈과 입과 발이 자유로운 기차 여행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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