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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04. 2020

무겁고도 무서운, 일상


집에만 있은 지 2주일이 넘었다. 연구소의 모든 강의를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외부 강연 역시 있을 리 없다. 강제 휴가를 받았네. <베트남 소도시 여행>의 출간 역시 미뤄지고 있다. 셋째 출산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3월이 시작되었지만 같은 상황일 것으로 예상되고.    

  

일 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마저 어긋나고 있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2월부터 3개월 동안 바리스타 기초 과정을 신청했는데 수업 3번 하고 휴관 중. 오랫동안 벼르다 시작한 수업인데 이렇게 될 줄이야. 동네 헬스장에서 PT를 받고 있었는데 2번 하고 휴관 중. 모든 것이 멈춰진 상태다.      


그야말로 집에서 ‘혼자와 잘 지내는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그저께부터 대공원 산책을 시작했다. 어느새 날이 많이 따스해졌다. 여전히 헬스장은 갈 수 없고 밖에서 걷기라도 해야지. 가능하면 외출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다보니 이것조차 눈치가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집에만 박혀 있어 답답하기도 하고 통 운동을 못해 몸이 찌뿌등 했다. 탁 트인 야외니까 마스크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혹시 몰라 쓰고 나갔다.      



걷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마스크를 쓴 상태였다. 아 이놈의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을 걷자니 어찌나 숨쉬기가 불편하던지. 미세먼지도 없이 맑은 날 이게 뭔 짓이여! 마스크 안은 금방 습기로 가득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운동을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그래도 한 바퀴 걸었더니 몸도 기분도 훨씬 가뿐하다.     



3월 역시 ‘임시 중단’ 생활을 해야 한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지금까지는 곧 끝나겠지 하면서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3월 내내 같은 상태일 거라면 이미 ‘임시’가 아니라 ‘일상’이 되는 것이다. 답답하겠지만 마스크 쓰고 대공원 걷기도 매일 하고, 사다놓은 책 열심히 읽으며 기록하고, 잘 먹고, 잘 웃고, 그것이다. 혼자와 잘 지내는 기술. 무언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간에 ‘비는’ 시간이 아니라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시간. 순간순간이 그러해야 한다. 세상에 쓸 데 없는 일은 없다 하니 생에서 쓸모없는 시간 또한 없을 테지.     


내게 요즘 가장 무겁고 무서운 말은 ‘일상’이다. 별 거 없는 하루하루, 그 일상을 잘 살아내는 일이 가장 어려운 도전인 것이다. 여행에서 몇 달 정도는 차라리 쉽다. 특별함으로 가득한 시간이니까. 우유의 유통기한처럼 언제까지가 안전한 지를 알 수 있으니까. 일상은 끝을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다. 잘 살아도 못 살아도 그럭저럭 흘러가는, 그래서 놓치기 쉬운. 아차, 하는 사이에 정신 놓았다가 뒤돌아보면 이미 까마득히 가버리는. 언뜻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실상 무겁기 짝이 없는 놈.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놈. 민감하게 그러나 유연하게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 놈을 다룰 줄 알아야 사는 게 만만해질 터.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굿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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