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흔들린다. 나는 나이 들수록 흔들린다. 마흔에 불혹이라니, 그건 공자님이나 가능하겠지. 마흔은커녕 오십이 넘었어도 마음이란 놈은 젖은 낙엽처럼 뒹굴다 땅바닥에 달라붙거나 때로는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볍게 부서진다. 어찌나 잔망스러운지 고작 날씨 하나에 가라앉기도 치솟기도 한다.
파란색은 어디 가고 회색빛이 하늘을 뒤덮는다. 늦가을도 아닌데 공기는 습습하고 은근한 찬바람이 턱 밑을 파고든다. 어깨가 움츠러든다. 걷기 싫다. 밖에 나가기 싫다. 종일 핸드폰 화면만 쳐다본다. 흥미성 기사들. 그 밑으로 이어지는 다른 기사들. 텅 빈 눈으로 누르고 또 누른다. 쓸데없는 시간을 가벼운 방식으로 보낸다. 동시에 나는 삽을 든다. 나이 오십에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20여 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사회생활도 안 해봤고 세상을 모른다. 삽질 한 번, 나는 땅속으로 한발 들어간다. 그래,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아 어쩌다 또 여행책을 두 권 썼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아니고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니다. 삽질 두 번, 나는 땅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간 크게 사무실을 마련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 매달 운영비나 적자가 안 나면 다행이다. 삽질 세 번, 이젠 무릎까지 진흙탕 속에 움푹 빠진다. 더구나 올해 상반기는 완벽하게 적자다. 하반기는 괜찮을까. 그걸 만회할 수 있을까. 삽질이 이어진다. 이제 허리까지 파묻혔다. 단지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시국에 세 번째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러다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는 있는 걸까. 뭘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기나 한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땅을 파고 목만 내놓고 있었다.
무조건 뛰쳐나가야 하는 날이 있다. 등 뒤로 격려하듯 햇빛이 두드리는 날. 눈부시게 정면에서 들이치는 햇빛보다 그게 더 반갑다. 등짝이 따시면 고봉밥을 먹은 머슴처럼 든든함이 차오르니까. 어제는 서울대공원 잔디밭에 앉았다. 김밥과 커피를 들고서. 마른 풀밭은 부드러운 노란색이었다. 게다가 푹신했다. 축축하게 젖었던 마음도 그렇게 바싹 말랐으면. 김밥 하나에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아마 조금씩 보송해졌던 것 같아. 그래서 오늘도 거리를 걸었다. 대공원 벚꽃은 아직 망울져있을 뿐, 그들의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굴다리 시장으로 향했다. 동네에서 가장 일찍 피는 벚나무길이 있는 곳이다. 상추며 쪽파를 쌓아놓은 노점들 위로 오래된 벚나무 가지가 늘어졌다. 참을 수 없다는 듯 한껏 터진 꽃 무리 사이로 꽃비가 흩날렸다. 최고일 때 무대에서 내려오는 여배우처럼 벚꽃은 피어날 때와 질 때를 절묘하게 알았다. 꽃잎 하나가 손바닥을 스치며 떨어졌다. 나는 길 한가운데 서서 고개를 꺾어 하늘을 가로지른 꽃가지와 춤추는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이상하다.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희망이 차오른다. 뭐든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사월이잖아. 봄이잖아. 덮어놓은 책도 읽고 밀린 글도 쓰고 기쁘게 걷고, 그럼 되지. 막연한 긍정. 잔잔한 일상을 하나하나 해나가면 되지. 여태 살아왔듯이. 검증된 긍정. 대단한 게 없어도 성실하게 나를 믿으면서. 나를 완전히 놓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긍정.
마음 한끝이 향하는 방향이란 종잡을 수 없다. 이렇게 단순하게 땅속에서 위로 끌어올려 오다니. 순간에 ‘덥석’ 하고 말이다. 그저 햇빛이 좋았을 뿐인데. 단지 벚꽃이 피었을 뿐인데. 나는 그런 예감이 든다. 아마 언제나 흔들리며 살 것 같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바위 같은 확실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불혹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누가 그랬던가. 나침반의 바늘은 떨리며 정방향을 가리킨다고. 그렇담 뭐, 떨리면서 흔들리며 가는 게 맞는 건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