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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Jul 17. 2020

가르마를 바꿔라


염색할 때가 되었다. 가르마 사이로 하얀 머리카락이 빼곡하다. 2센티에 가까워 보인다. 어차피 해야 할 거, 미루지 말고 해버리자. 아침에 금천 50+ 센터로 출발하며 염색예약을 해놓았다. 7월 들어 네이버 밴드 라이브로 생전 처음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이번이 벌써 3주째, 다음 주면 끝난다. 강의하고 나면 에너지가 쭉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쉬어줘야 한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강의는 좀 낫다, 수강생들에게 나도 기운을 받으니까. 노트북 화면을 보며 하는 온라인 강의는 나름 재미있지만, 그저 에너지를 내보내기만 하는 느낌이다. 강의 후에 돌아와 점심 먹고 염색을 하면서 쉬어야지.     


염색 방. 강의는 잘 마쳤고 점심도 배부르게 먹었고 이제부터 머리를 맡길 시간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헤나 염색을 해왔다. 화학염색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염색약처럼 금방 쓱쓱 발라지지도 않는다. 바르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바르고 나서도 최소 2시간은 꼼짝 말아야 한다. 대신 몸에 해롭지 않으니 견딜 만하다. 헤나를 바른 뒤에 머리 전체에 랩을 씌우고 다시 수건으로 감싼 뒤 보자기를 써야 나갈 수 있다. 딱 동네 할머니 행색이다. 나는 그게 싫어서 그냥 염색 방에서 2시간을 보낸다. 책을 가져가서 읽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오늘은 이도 저도 내키지 않아 누워 있었다. 염색 방 사장님은 새로이 얼굴 마사지를 시작했나 보다. 한 켠에 간이침대가 놓였다. 누워 있으니 한결 편하긴 하네. 낮잠은 언감생심이므로 눈을 감고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즐겨 듣던 디스코 음악이다. 추억의 7080만 틀어주는 프로그램인가. 앗, 송골매도 나온다. 나는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 한창 인기를 얻었던 송골매 멤버 중에 리더인 구창모보다 뒤에서 기타를 치던 배철수를 좋아했다. 친구들은 열이면 열, 구창모 팬이었는데. 왠지 그의 분위기가 멋있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지, 지금의 배철수는 누구보다 매력적으로 나이든 중년이지 않은가. 이상은의 담다디까지 듣고 나니 드디어 머리를 감을 차례.      



내가 사장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머리 감겨주는 솜씨 때문이다. 어찌나 시원하고 편안하게 하시는지. 나는 미용실에서 파마할 때도 머리 감겨주는 시간이 제일 좋더라. 전생에 마님이었나, 내 손으로 하는 게 싫어. 흐흐. 손님이 나밖에 없으니 머리도 말려준다. 그런데 사장님의 머리 말리는 방식이 이상하다. 자꾸 다른 방향으로 하시네? 


“저는 왼쪽 가르마인데요.” 


“어머, 오른쪽이 훨씬 나은데요! 한 번 바꿔 보세요. 가르마도 자꾸 바꿔줘야 해요. 안 그러면 한쪽으로만 머리카락이 빠지거든요. 하긴 손님들 대부분이 하던 방향만 좋아하시긴 하더라구요.”     


순간 번쩍하고 스치는 생각. ‘다른 걸 시도하라. 하던 틀에서 벗어나라’. 이건 단지 가르마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잖아. 요즘 내가 집중하고 있던 바로 그것인데! 평생 처음으로 온라인 강의에 도전하는 것, 더 배우기 위해 여러 개의 강의를 신청한 것,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것.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나이 탓 능력 탓 남 탓을 할 겨를이 없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시도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과감하게 가르마를 탔다, 가운데로. 오랜만에 가운데 가르마를 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요즘 살을 빼서 그런가, 이전처럼 얼굴이 네모나 보이지도 않네. 됐다, 이제부터 가운데 가르마로 살아보자. 자주 벗어나고 자주 저지르는 인생으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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