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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ug 02. 2020

지금은 실시간 장마철


1.

거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온다. 창문을 한 겹 열었다. 방충망의 미세한 격자무늬에 걸러진 풍경이 흐릿했다. 방충망마저 열어 재꼈다. 가는 빗줄기가 하늘에 흩뿌리고 있었다. 점 같기도 하고 선 같기도 한 비는 이리저리 마구 몰아쳤다. 곧은 몸으로 주룩주룩 내려앉질 않고 방향 없이 헤프게 내달렸다. 그러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모양새는 영락없이 폭우지만 실상은 가랑비다. 바람이 잠시 멈추면 비는 마치 안개처럼 부해졌다.      

 

맞은편 청계산 자락의 나무 꼭대기도 흔들거렸다. 나무들의 머리채가 춤을 추면 어김없이 제주의 곶자왈이 떠오른다. 깊은 곶자왈 숲속을 걸으면 쏴아 하는 먼 바람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내 옷깃 하나 건들지 않으면서 나무들 위로만 부는 바람이다. 어쩐지 아득한 원시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귀로만 바람을 느꼈다. 영혼을 달래주는 소리였다. 저기 나무들도 느리게 몸을 움직였다. 진녹색의 작은 산은 수줍게 리듬을 타는 것 같았다. 사알짝 들썩거리며. 자세히 보아야 춤사위를 구경할 수 있다.     



이 집을 사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가 그것이었다. 바로 앞에 도서관이 있고 큰길에서 한 골목 들어와 조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마을버스 종점도 엎어지면 코 닿는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잡아 끈 건 저 ‘푸름’이었다. 거실 창으로 시원한 초록 산이 성큼 다가오고 집 뒤로도 야산이다. 시내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일명 숲세권이어서 맘에 들었다.      


비 오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건 오랜만이다. 비는 혼자 오는 것이 아니었다. 비를 부추기는 건 바람. 순진한 모범생을 유혹하는 문제아처럼 자꾸 등을 떠 민다. 그래 봐야 깜냥이 안 되는 것을. 몸부림을 쳐봐야 가벼운 보슬비인 것을.        



2.

장마철이어도 큰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지난주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마가 무엇인지 증명하겠다는 듯 매일 비가 쏟아진다. 이른 아침부터 굵은 직선으로 떨어진다. 방충망이 있어도 선명하게 보였다. 빗줄기는 오늘만 사는 건달처럼 아스팔트 위로 사납게 곤두박질친다. 부서진 것들은 곧 잘박하게 물길이 되어 흐른다. 후회 따윈 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 기세가 어쩐지 부럽다. 앞도 뒤도 없이 모든 걸 내던지는 무모한 기세가. 한때는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긴 생 중 한 시기는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우우, 비가 말하는 것처럼 소리를 낸다. 창문 앞에선 토도독거리고 주차장 너머에선 졸졸거린다. 비는 동시에 여러 개의 소리를 가졌다. 그럴 만도 한 게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빗줄기로, 그것이 하늘을 가득 채워 ‘비’가 내린다. 하나이자 전체이고 세포이자 몸체인 것. 하나가 진동하면 전체가 반응한다. 신비롭다.     

 

한동안 세차게 내려치다 잠시 멈추었다. 그 사이로 새소리가 날아든다. 삐리삐리 휘파람처럼 높은 소리, 까아깍 까치소리, 째륵째륵 경쾌한 소리. 비오는 날에도 새들은 노래하는구나. 나에겐 노래지만 그들에겐 생존이겠지. 비 온다고 삶을 멈출 수는 없을 테니. 그래 여전히 노래해야 한다. 촤르르 빗길을 가르며 달리는 차 소리. 저건 골목 건너 노란색 마을버스일 것이다. 사람들 역시 새들처럼 일상은 이어지니. 나는 거실 창에 붙어 바깥을 내다보다가 책상에 앉았다. 자판을 두드리며 식은 커피를 마신다. 오케스트라 협연 같은 빗소리를 듣는다. 살아있는 것들의 몸짓을 듣는다. 일요일 아침은 고요하면서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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