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살아온 방식 이제부터 살아갈 방식

유방암이 주는 선물

by 소율


암에 걸렸다는 것은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을 바꾸라는 신호다.

수술과 여타 병원 치료는 빙산의 일각을 떼어내는 것일 뿐. 그 아래에는 몇 백배의 얼음덩어리가 숨어 있다. 그것을 꺼내어야 한다. 목숨을 위협하는 모든 병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닐까. 단지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다 자신이 불러오는 것이니. 모든 건 필연일 터.


2011년 4월, 아들과 긴 여행을 떠난 것으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때부터 이미 나는 변한 거라고. 그건 사실이었다. 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 도대체 무엇을 더 바꾸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이미 일상이라는 틀을 깨고 세계여행을 감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였다. 더 이상 변해야 할 게 남아 있는가? 나의 여행은 이미 늦은 선택이었나?


이제야 알았다. 나의 변화는 아직 부족했음을. 여행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실행한 것은 물론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여행이 1단계 변화였다면 이제 한층 업그레이드된 2단계가 있어야 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숙제는 스트레스를 주는 타인의 요구를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발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족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산 것. 서로가 너무나도 다른 상식 수준.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도리와 의무감. 그들은 늘 내 능력 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 스스로도 그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많았다. 자신에게, 또 남들에게 할 만큼은 했다는 방패막이가 필요했던 게다. 그걸 놓지 못했다. 어차피 그들은 인정해 주지도 않는데. 아무리 해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데. 마음으로만 말로만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결국은 억지로 해내는 것. 그리고 그 보답 없음에 미칠 듯이 스트레스받는 것. 이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었다. 나는 시작부터 지는 싸움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게 내 대응방식이었다.


이제 예의고 상식이고 도리고 다 필요 없다. 하기 싫은 일은, 내 마음이 아니라고 하는 일은 거부하겠다. 상대가 누구 건 간에. 내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나? 가족에게 사랑받는 삶이었다. 받으려면 달라고 해야 했다. 구해야 받지. 이전까지는 내가 이만큼 했으니 당신들도 알아서 줘야 하지 않겠냐? 고 생각했다. 서로가 알아서 잘한다면 세상에 왜 그리 많은 문제들이 존재할까.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진정 원한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나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삶이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귀하다. 나는 원래부터 멋진 사람이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모든 인간관계가 무슨 소용이랴? 내가 불행하면 가족이 다 무엇이랴? 바꾸어라. 완전히 바꾸어라.


이제부터 나는 나를 다시 기르기로 했다. 내 새끼 키우듯 정성스럽게 기쁘게. 단 너무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련다. 하고 싶은 만큼만, 즐거운 만큼만. 어깨에 힘을 빼고서.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라는 책에서 그러더라.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 아홉심히만 살자.”


가슴에 착 들어오는 문장이었다. 그래, 아홉심히만 살아보자. 저자는 또 이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아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와, 이거야말로 명문이다. 앞으로 내 표어는 이거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엉뚱하게도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인생의 명언 두 가지를 얻었다. 아, 이래서 삶은 재미있다니까.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들을 분석하고 판단하지 말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겪어야 할 경험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 내가 모르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겠지. 그들의 관점에서 체험하고 깨닫고 싶은 것들이 있는 것이겠지. 누가 어찌 살든 나나 잘 하자. 나 자신부터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내가 행복해져야 내 가족도 행복해진다. 세상도 행복해진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빛이 돼라. 하지만 어둠을 저주하지 마라."

- <신과 나눈 이야기>, 닐 도날드 월쉬, 아름드리 -


다른 방법으로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유방암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