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세줄 6기> 6일 차 ~ 10일 차
바다를 좋아하나요? 숲을 좋아하나요?
바다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두 시간 이상 머무르긴 힘들다.
아마 수영을 못 하는 게 큰 이유가 아닐까.
수영을 즐긴다면 몇 시간이고 바다에서 보내는 걸 좋아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숲 취향이다.
산꼭대기를 오르는 등산 말고 숲길을 천천히 걷는 것이 참 좋다.
숲에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다.
볼 것도 많고 걸을 데도 많고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진다.
제주 곶자왈을 특히 사랑하는데 제주도에 갈 때마다 꼭 들른다.
대부분의 곶자왈을 거의 걸어보았다.
내년의 꿈은 제주도 1년 살기.
1년 동안 제주도의 걷기 좋은 숲길을 다 걸어보는 게 나의 원대한 목적이다.
올 가을에 한 달 살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살짝 맛을 봐야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
7일 차
소금이 설탕에게
널 생각하면 여왕이 떠오른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거만하고 화려한 지배자.
너의 힘에 모두 굴복하지.
'달콤함'만큼 대단한 권위가 있을까?
울던 아이도 멈추게 하고 화난 노인도 웃게 만드는 강력함.
너는 그 자체로 빛나는 보석같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널 피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너의 마성에 다시 빠지고 말아.
너는 거부할 수 없는 팜므파탈이랄까.
솔직히 네 옆에 서면 어쩐지 나는 초라해진다.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추앙하지만 그건 너무 실용적이잖아.
'짠 맛'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없어.
성실함, 소박함, 검소함, 이런 단어가 어울리지.
오색찬란한 화려함으로 세상을 누비고 싶은데 슬프게도 그건 내 것이 아니야.
나는 묵묵히 한 걸음씩 갈 수밖에 없는 밋밋한 존재니까.
아 그게 나의 운명.
내 곁을 지키는 자들은 진실함과 끈기를 가진 사람들일 거야.
나는 그들과 함께 조용히 그러나 굳세게 살아갈게.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스물여덟 봄에 나는 결혼을 했다.
그때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늘 하고 싶었던 출판사 편집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책을 만들다 어쩌면 삼십 대쯤에 여행에 눈을 떴을지 모른다.
몇 년쯤 여행을 하다가 결국 책을 썼겠지.
일하고 여행하고 책을 쓰며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
가부장적인 시댁에 얽매여 살았던 최소 15년에 조금 자유로워진 나머지 10년을 합치면 25년이다.
그 시간을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았다면 뭘 해도 전문가가 되지 않았을까?
타인이 아닌 나에게만 매진한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첫 번째 애인이었던 남편과는 헤어지고 다른 남자들을 사귀었을 테고.
사람 관계에 대해 순진하기만 했던 내가 여러 번의 연애를 통해 훨씬 성숙해졌을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런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멋진 아들과는 못 만났을 것 아니냐고.
며칠 전에 브런치에서 같은 글을 읽었다.
딸이 바로 그렇게 말했더니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단다.
"어머, 그럼 너희들 말고 다른 이쁜 애들을 또 낳았겠지!"
우하하!!!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속이 뻥 뚫리게 시원했다.
싱글이라고 해서 무조건 한 가정의 주부보다 나은 인생일 거라 속단하진 않는다.
다만 내 경우, 기회는 훨씬 많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인생을 되돌릴 순 없으니 이제라도 남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나에게 3월이란
3월은 묵은 겨울이 완전히 가는 달이다.
한 계절이 물러가고 새 계절이,
그것도 따뜻한 봄이 오는 3월이야말로 진정한 새해의 시작일지 모른다.
가끔 날이 추워도 겨울 파카는 입기 싫다.
올해는 유독 꽃소식이 빠르다.
낮에 시내에 나갔다가 향긋한 꽃냄새에 이끌렸다.
차들이 지나가는 작은 도로 앞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마스크를 내려 향기를 맡았다.
없는 희망도 퐁퐁 생길 것 같았다.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은 도시
한 달이란 시간은 반쯤은 여행이고 반쯤은 생활이기도 하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곳은 단연 제주도.
동서남북 중 어디가 좋을진 몰라도 일단 제주도라면 합격이다.
겨울엔 따스한 서귀포 쪽이 좋을 테고 여름엔 시원한 중산간 쪽이 낫겠다.
얼마 전 제주 공항으로 가던 택시에서 기사님께 여쭈어보았다.
도민의 시각으로 어디를 추천하시나요?
조용한 곳을 원하신다면 애월, 함덕, 선흘이 좋겠습니다.
나는 얼른 머릿속 수첩에 세 곳을 적었다.
까먹을까 봐 핸드폰에도 입력시켰다.
오랫동안 하고 싶어 했고 올해는 정말로 실현해 볼까, 마음먹는 과정에 있다.
뭐든 마음먹기가 90퍼센트라고 생각한다.
굳게 결심을 하면 나머지 10%는 쉽게 따라온다.
목표는 10월,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