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만보

난이도 하, 초보가 걷는 법

by 소율

두 다리만 성하다면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바르게 걷는 법을 찾아보면 ‘턱을 당기고 시선은 약간 위로,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곧게 펴고 발뒤꿈치부터 딛는다’라고 나온다. 물론 좋은 방법이다. 만약 당신이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았던 사람, 즉 걷기 초보자라면, 나는 위의 교과서 문장 외에 한마디만 더하고 싶다. ‘먼저 즐겨라.’ 초보자는 얼마나 많이 걷느냐보다 얼마나 부담 없이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쉽 디쉬운 걷기라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의무감과 부담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 걸음마를 배우고 걷게 된 후로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걸을 수 있다. 운동이 아닌 느릿느릿한 산책을 해 보자. 기왕이면 나무가 우거지거나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첫 산책으로 권하는 곳은 집에서 가까워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장소, 그러면서 아름다운 곳이다. 자신이 사는 동네의 공원이나 개천 길, 야산 입구의 약수터 정도가 적당하다.


특히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에 걷기를 시작하면 한결 수월하게 습관을 들일 수 있다. 나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걸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몽우리 진 벚꽃과 개나리가 하나둘 피었다가 지는 시간을 슬로비디오처럼 감상했고 이른 봄의 연두는 꽃보다 고왔다. 아기 같은 연두색이 하루하루 초록으로 짙어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내 새끼 자라는 것처럼 뿌듯했다. 가을 역시 노랑 빨강 낙엽이 물들고 떨어지는 풍경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름답게 변화하는 자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절은 걷는 자에게 축복이다. 계절의 속살을 맛보면 저절로 걷기에 빠져들게 된다. 단 복잡한 차도 옆 인도나 모래 먼지 날리는 학교 운동장은 피할 것. 자칫 걷기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심어주기에 알맞은 곳이다. 강조하지만 초보자에게 중요한 건 걷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는 몇 보를 걷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날그날 내키는 만큼만 걸었다. 오히려 좀 부족하다 싶게, 걷고 나서 힘이 남을 정도로. 기분에 취해 무리하게 걸은 날은 다음날 힘들었고 그 여파가 며칠은 갔다. 암 환자 출신의 한계였다. 넘치는 것보단 부족한 게 낫다는 걸 몸이 깨우쳐 주었다. 남이 나에게 또는 내가 나에게 억지로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나는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 뒤에라야 목표란 걸 받아들이는 인간인 것이다. 일명 ‘느림보’ 스타일.


이만하면 걷기가 익숙해졌다 싶을 때 목표를 세워도 늦지 않다. 꼭 만 보일 필요는 없다. 오천 보면 어떻고 칠천 보면 어떤가. 즐기는 마음으로 한두 달을 열심히 걸으면 작은 변화가 느껴질 것이다. 전철역에서 열 계단만 올라도 헉헉거렸는데 예전과 달리 이상하게 거뜬하다든가, 오랜만에 동네 산에 갔는데 전보다 가볍게 오른다던가. 그럴 때 서서히 목표를 올리면 된다, 만 보까지.


하지만 사람마다 방식은 다르다. 처음부터 목표가 분명해야 힘이 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좀 힘에 부치다 싶게 약간 높은 목표를 잡고 매진하는 부류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주올레길을 걷는다면 첫 코스부터 마지막 코스까지 빈틈없이 도장을 찍어가며 완주한다거나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을 찍어야 속이 시원한, 일명 ‘악바리’ 스타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잘 모르겠다면 아무거나 시작해 본다. 전자를 해봤는데 맞지 않으면 후자를 시도하고 당연히 그 반대쪽도 가능하다. 재고 망설일 동안 일단 시작하는 게 결국 빠른 길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시길.


자타 공인 지독한 의지 박약자일 경우, 같이 걸을 동료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오늘은 건너뛰고 싶어도 기다리는 친구 때문에 억지로라도 나가게 되니까. 마음이 맞는 동행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진 않는다는 걸 다들 알고 계시죠? 최선이 아니면 차선, 동행이 없으면 혼자라도 걷는다. 걷기는 어차피 배드민턴이나 탁구, 축구처럼 팀플레이가 아니지 않은가.


동행 걷기의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된다. 서로 시간을 맞춰야 하고 동행이 빠지면 덩달아 나도 빠지고 싶다는 함정이 도사린다. 기껏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동행이 결석하면 김이 샌다. 동행이 늦게 나오면 길에서 하릴없이 기다려야 한다. 혼자라면 아무 때라도 구애됨이 없이 걸을 수 있다. 오늘은 7시에 내일은 8시에 나간다 한들 눈치 볼 일이 없다. 나로선 그게 좋았다. 같이 했으면 빠질 만한 날도 오히려 혼자였기에 늦게라도 할 수 있었다.


걷기 초보자는 체중 감량을 기대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목표는 딱 ‘걷는 습관 만들기’가 좋다. 식단을 관리하지 않고 조금 걷는 것만으로 살이 빠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어서 음식 조절 없이 만 보 걷기로만 한 달에 2, 3kg이 빠졌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일반적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원한다면 단순하게 1. 적게 먹고 운동하기 2. 평소처럼 먹고 아주 많이 운동하기. 3. 많이 먹고 극도로 심하게 운동하기(하정우 스타일). 이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


굳이 고르자면 나는 1번 쪽에 가깝다. 하지만 음식 조절이라야 탄수화물만 줄였고 운동량도 만 보에서 만 오천 보정도면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5kg을 감량하기까지 10개월이 걸렸으니 평균 2개월에 1kg.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고마 때려치울’ 속도라고나 할까. 외려 나는 원래 정한 기한 12개월보다 2개월을 앞당긴 상태라 속없이 기뻐했다. 알고 보면 꽤 단순한 여자랍니다. 뱁새로서는 그것도 큰 진전이니까요. 식사량을 줄이지 못해도 늘리지만 않으면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체중에 별로 변화가 없더라도 눈 바디가 달라진다. 실제로 사이즈가 줄어드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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