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보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완벽함’이다. 짧게 하고 말 거라면, 예를 들어 딱 한 달만 걷겠다면 완벽을 목표로 삼아도 좋고 완벽에 도달하기도 쉽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 1년을 나아가 평생을 걸으려 한다. 길게 보자. 어깨에 힘이 들어갈수록, 완벽을 추구할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완벽하게 하려다가 시작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적어도 만 보 걷기에 관한 한 ‘적당히’ 해도 괜찮다. 이것만 기억하자, ‘무조건 하루에 만 보만 채우면 된다.’ 즉 오늘은 오늘치 걸음만. 파워워킹으로 전력을 다해 걷는 것을 말리지는 않지만, 굳이 추천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은 굳은 의지가 필요하고 결국,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극소수의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단언하건대 당신의 의지를 믿지 마라. 고백하건대 나는 절대 나의 의지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슬렁슬렁 대충 걷겠다는 봄바람 같은 태도가 바람직하다. 가볍게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면 어느새 걷기가 당신의 친구가 될 테니.
걷기만큼 준비물이 간단한 운동이 있을까. 두 가지만 있으면 끝, 운동화와 스마트밴드(또는 만보기 앱). 나는 주로 가벼운 트래킹화를 선호한다. 발에 맞는 편한 운동화라면 대체로 무리 없다. 밑창이 얇은 납작한 운동화는 한 시간 이상 걸으면 발바닥이 아플 수 있으니 참고할 것.
한여름에는 스포츠 샌들도 괜찮다. 안 그래도 더운데 양말 신고 운동화까지 신고 나면 걷기도 전에 땀이 난다. 맨발로 스포츠 샌들을 신으면 한 시간 정도 걸어도 거뜬할뿐더러 발이 시원하다.
걸음 수를 측정하고 기록하기 위한 두 번째 준비물은, 핸드폰에 깔아놓은 무료 만보기 앱도 나쁘지 않지만, 경험상 스마트밴드를 권장한다. 만보기 앱은 늘 핸드폰을 몸에 지녀야 해서 약간의 불편이 따른다. 손에 들거나 호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이 필요하다. 가끔 앱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열심히 걸은 걸음 수를 날리게 되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스마트밴드를 손목에 차면 그야말로 가볍게 몸만 나갈 수 있다. 걷는 동시에 바로 걸음 수 확인이 가능하다. 기능과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므로 자신에게 적당한 제품으로 고른다. 나는 찬 듯 안 찬 듯 가볍고 충전 후 배터리가 오래가는 제품을 선호한다.
위의 두 가지 필수품 외에 내가 항상 챙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물병이다. 500ml 물병에 물을 담아서 나간다. 걷다 보면 당연히 땀이 나고 목이 마르지만, 특히 내가 평소에 먹는 약들이 갈증을 부르는 부작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더운 날은 두 병, 보통 때는 한 병. 그야말로 생명수나 다름없다. 탄산수나 과즙음료는 먹을 때만 시원하게 느껴지지 실은 더욱 목마르게 만드는 주범이다. 평소에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도 걸을 때는 물을 꼭 챙기길 바란다.
생활 걸음의 재발견
보통 걸음으로 만 보를 걸으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6km,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소문난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지만 매일 걷기에는 내 동네가 제일 좋다. 집 근처의 공원이나 개천 길, 낮은 등산로, 둘레길 등 요즘엔 어느 지역이나 걷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나는 어떻게든 만 보를 채우려고 궁리하다가 갖가지 기술이 늘었다.
먼저 생활 걸음에 집중하자. 생활 걸음이란 일상에서 자연스레 걷는 모든 걸음을 일컫는다. 운동 시간을 따로 확보하는 것보다 생활 걸음을 늘리는 게 수월하다. 누구 말을 따라 하는 것 같지만, ‘해봐서 아는데’ 집안일을 아무리 동동거리고 해 봤자 천 보가 나오기도 어렵다. 아무래도 밖에서 걷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나갈 일도 없고 나가기도 싫다고? 반드시 나가야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면 어떨까? 말하자면 오늘따라 이유 없이 걷기 싫은 ‘단순 변심’ 상태라면 ‘환불 불가’ 상태로 바꾸는 것이다.
좋은 예로 ‘도서관 대출 신청’ 같은 것이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도서관이 있지만 30분쯤 떨어진 다른 도서관으로 출장 간다. 코로나 여파로 도서관이 휴관 중이었다가 다시 열었다가를 반복했었다. 특히 휴관 중일 때 인터넷으로 대출 신청을 하면 이틀 안에 찾아와야 했다. 기간과 시간을 맞추어 대출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 왕복 1시간. 7천 보는 확보할 수 있다. 나머지 3천 보는 껌이겠지? 요즘은 도서관들이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있으나 출장 가기는 여전히 좋은 것이여.
쇼핑할 때 인터넷으로 하지 않고 직접 가는 것도 방법이다. 단 정식 장보기는 제외한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올 생각을 하면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지니까. 무게가 나가는 감자, 양파, 과일 같은 식료품 말고 작은 생활용품을 사러 갈 때 걸어간다. 장바구니 대신 작은 배낭을 가져가면 두 손이 자유로워 훨씬 걸을 맛이 난다. 나는 일부러 거리가 있는 마트까지 걸어간다. 집에서 왕복하면 약 8천 보, 물건 고르느라 걷는 것까지 합치면 만 보는 거뜬하다.
직장이 멀지 않다면 걸어서 출퇴근하기를 시도해 보자. 퇴근 후 운동 시간을 따로 내는 것보다 오히려 시간이 절약될 것이다. 웬만하면 거를 염려도 없으니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그 외에 버스 정거장이나 전철역까지 걸어가기, 혹은 한두 정거장 전에 미리 내려서 걸어오기 등.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루 전체의 생활 걸음을 측정하기엔 핸드폰보다 스마트밴드가 간편하다. 이제부터 아침에 세수한 뒤 손목에 스마트밴드부터 채울 것. 한꺼번에 만 보를 걸으려고 하면 통으로 시간을 내어야 하지만 반씩 나누어 걸으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오천 보씩 나누어 걷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간단한 방법을 공개한다. 하루 세 번 식사 후 30분씩 걸으면 금방 만 보가 된다는 사실,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는 슬픔처럼 걷기 역시 쪼갤수록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