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만보

실내 걷기 전문입니다만

실내 걷기를 무시하지 마세요

by 소율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고 걸으면 안쪽에 습기가 방울방울 맺히는데 나는 그게 정말 짜증 난다. 게다가 유별나게 추위에 민감한 편이라 날씨가 추우면 무조건 밖에 나가기 싫다. 한겨울은 물론이고 3월까지의 봄추위에도 움츠러든다. 특히 찬 바람 쌩쌩 부는 날은 오우 노노. 그렇다고 더위를 잘 견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고로 자연스럽게 실내 걷기의 기술을 연마할 수밖에 없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나로 말하자면, ‘실내 걷기 전문’이 되었다. 날이 춥거나 덥거나 미세먼지가 지독해서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걷기를 포기해야 할까?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에겐 실내 걷기가 있으니까. 집에서 하는 실내 걷기는 진실로 ‘유레카!’ 수준의 발견이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1층이라 실내 걷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어 주었다. 크기는 작지만 약간 긴 형태의 구조여서 직선으로 왔다 갔다 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일단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땐 보조도구 없이 그냥 걷는다. 아랫배를 등가죽에 붙인다는 느낌으로 바싹 힘을 주면서 집중하면 딴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쩐지 뱃살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숨은 장점이다(실제로 그런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은 주의하기 바란다).


지루하다 싶으면 약간의 도구를 이용한다. 즉 영어 회화나 팝송, 오디오북, 팟캐스트 등을 들으며 걷는다. 시간이 빨리 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아래층이 신경 쓰인다면 두꺼운 매트를 깔고 제자리 걷기를 해 보자. 이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제격이다. 청각에 시각을 더하면 걸음이 더욱 즐거워진다. 드라마에 빠지면 나도 모르게 만 보쯤이야 훌쩍 넘긴다. 제자리걸음도 걷기일까, 이까짓 게 무슨 운동이 될까,라고 의심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 무한 긍정 모드로 자신을 위로하기. 소화, 운동, 공부, 재미까지 여러 개의 효과가 덤으로 따라온다.


마지막 신의 한 수는 제자리 뛰기다.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는 '제뛰'라고 표현했다. 예전에 헬스장을 다닐 때도 나는 달리기와 거리가 멀었다. 겁이 났다. 내가 감히 달리기를 어떻게 하나. 걷기에 비하면 뛰기는 고난도의 기술이 아닌가. 러닝머신 위에서 걷다가 어쩌다 기분 좋을 때 1분 정도만 뛰어도 대단한 날이었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집에서 하는 제자리 뛰기는 훨씬 느리고 엉터리인 탓에 부담이 없다. 어쨌거나 만 보만 차면 그만이니까. 남편이 넷플릭스를 켜면 옆에서 같이 보면서 슬슬 뛴다. 정신 사납다고 타박해도 굴하지 않는다. 혹시 그가 짜증을 내려고 하면 얼른 주방 쪽으로 도망간다. 그럭저럭 어느새 만 보가 되면 어찌나 뿌듯한지.



나는 ‘제걷’과 ‘제뛰’를 번갈아 하기도 한다. 조금 뛰다가 조금 걷다가 반복하는 것이다. PT를 받을 때 트레이너가 가르쳐 주었는데 훨씬 운동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인터벌 운동인가 싶지만, 인터벌이라기엔 강도가 심하게 약하므로 ‘나일론 인터벌’이라고 해두자. 제자리 뛰기라 해도 계속 뛰면 힘드니까 저절로 걷게 되고 걷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뛴다. 어렵지 않다. 내가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제자리’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것. 심지어 뒤처지기 직전의 상태. 그러나 제자리 걷기도 제자리 뛰기도 엄연한 전진이라 생각한다. 겉으로는 못 박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움직이는 것이니. 전례 없이 힘든 코로나 시기, 대면 강의가 중단되고 작업이 끝난 세 번째 여행 에세이의 출간마저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소소하게 읽고 쓰고 걸으면서. 우리가 지금 살아내는 시간이 제자리 걷기, 제자리 뛰기일 것이다. 그것도 괜찮다.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실내 걷기의 기술은 진(眞)짜 진(進)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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