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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04. 2018

발톱 수난시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2017년 5월 21일>



"으아악~~~~ 엉엉 아퍼아퍼~~"
"왜왜!!! 무슨 일이야?!"


금요일 아침, 부엌에서 난리가 났다.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비명만 질러댔다. 싱크대 앞을 걸어가던 중, 나의 오른발에 왼발 엄지발톱이 탁 걸렸다. 순간 발톱이 벌러덩 뒤집어져 뿌리 부분만 붙어있었다. 피가 줄줄 흐른다. 발톱이 하늘을 향해 발딱 서있다. 차마 쳐다보기도 끔찍했다. 오른발아,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발톱을 파고드는 고통에 소리만 질렀다. 남편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아, 결국 이리 되는구나. 엄지 발톱의 수난은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월말에서 3월초 일주일간 제주도를 다녀왔다. 일명 '에라 여행'으로 내 인생 최초의 다이어트 여행이었다. 올레길만 걷는 여행이다. 요즘 통 걷지를 못 해서 일주일 내내 실컷 걸어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첫 날부터 발상태가 좋지 않더니 3일쯤  걸었을 때는 양쪽 엄지발톱에 시커멓게 피멍이 들고 물집이 잡혔다. 특히 왼쪽 엄지발톱 상태가 심각했다. 곧 발톱이 빠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 빠지더라. 그후 하루는 욱신거리고 아프다가 하루는 괜찮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두 달이 넘으니 통증도 가라앉아서 이대로 나으려다보다 안심했지만. 



그동안 나아가던 게 아니라 더 악화된 모양이다. 심하게 부딪친 것도 아닌데 이리 맥없이 뽑힐 줄이야. 
이럴 거면 진즉에 3월에 빠져 버렸어야지. 이제 와서 이게 뭐람. 게다가 뽑힐려면 아주 뽑혀버리지, 뿌리만 남아 덜렁거리니 미치겠다. 저걸 마저 뽑아야 할텐데 도저히 손댈 자신이 없다. 피가 흐르는 엄지발톱을 휴지로 조심스레 싸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마침 집에 남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자, 두 가지 중에 선택을 하세요.
마취하고 뽑느냐, 그냥 뽑느냐.
마취는 발톱 밑에 주사를 놔야 하니 오히려 그게 더 아플 수 있어요.
저라면 그냥 뽑는 걸 선택합니다.
0.1초만에 순식간에 할 거니까 그쪽이 더 나아요."


오마이갓!!! 피가 흐르는 생살에 또 주사바늘을 찔러댄다고라??? 
나의 선택은 당연 후자였다. 과연, 의느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엄지발톱은 엄지로부터 해방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독하는 게 더 아팠다. 간호사는 항생제 주사를 엉덩이에 놔주었다. 뭔 주사를 한 번에 안 찌르고 세 번에 걸쳐서 나누어 찌르냐. 엄청 아프네. 



"주사가 왜 이리 아파요?"
"원래 항생제 주사가 주사 중에 제일 아파요."


이날 사실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내 두번째 책을 계약하러 가는 날이었다. 이런 날 하필, 사고가 나다니.막장드라마도 아니고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의사 눈치를 보며 외출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의사는 이마에 힘을 빡 주었다. 그리곤 단호하게 외출금지를 선언했다. 

"오늘은 어디 나가면 안됩니다. 출혈이 심할 수도 있어요.
꼼짝말고 집안에 있으시고요, 움직이지 마세요.
발을 높이 올려놓고 계시는 게 좋습니다."

결국 출판계약을 다음주로 미루었다. 일주일 정도 후에는 걸어다녀도 될 거란다. 사실 왼쪽 엄지발톱의 상태는 내내 좋지 않았다. 근데 그걸 계속 외면했다. 오른발에 부딪쳐서가 아니라 이미 빠질 상태였던 거다. 빠질 때가 되어 빠진 것일 뿐.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건가. 문제인 줄 알면서 대면하기 싫어 회피해봐야 결국엔 더 크게 닥친다는 결론. 엄지발톱 말고도 도망가지 말고 직면해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나저나 이제는 걷는 게 무섭다. ㅠㅠ
좀만 걸어도 물집에 피멍에, 내 발은 아니 내 몸은 어째 이리 약해빠졌나? ㅠㅠ
유방암을 겪고서도 멀쩡하게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내 몸은 이렇게 환자체력 수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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