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라는 이름값

괜찮은 인생

by 소율


2022년 3월 22일.

유방암 10년 차 검사 결과를 들었다. 일주일 전 종합 검사를 받을 때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혈액 검사를 포함해서 총 일곱 개의 검사는 솔직히 매우 귀찮았다. 귀찮다니, 그 자체가 이미 위험지대를 벗어난 사람의 태도였다.


의사가 바뀌었다. 드물게 환자를 존중해 주었던 이전 의사는 퇴직을 했고 다른 일반의를 만났다. 그는 웃는 얼굴로 다 괜찮다고, 이상이 없다고 했다. ‘드디어 10년 통과!’라는 지점에 이르면 격정적인 환희에 휩싸일 줄 알았다. 그러나 잔잔한 물결 같은 기쁨이 밀려왔다. 휴, 한숨이 크게 쉬어졌다.


내년부터는 유방 촬영과 유방 초음파, 두 개의 기초적인 검사만 받으면 된다. 이야, 드디어 지긋지긋한 검사로부터 해방이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서도 멀어졌다. 의사는 안도하는 나에게 주의점을 알려주었다.


골감소증으로 골밀도 수치가 낮다고 했다. 햇볕을 쬐면서 걷고 푸른 채소를 섭취하란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타목시펜을 복용할 때는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었다. 약을 끊고 나서 그나마 수치가 올라간 것이었다.


“제가 매일 만 보씩 걷고 채소도 챙겨 먹고 있어요.”


그는 다시 말했다.


“잘하고 계시는 것에 비해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유방암 치료 후에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어쨌든 더 나빠지지만 않게 관리를 해주세요. 현재 뼈 나이가 70대 수준이에요.”


앗, 70대라고! 단순히 골감소증이라고 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70대라 하는 것은 엄청나게 느낌이 달랐다. 작은 펀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랄까. 10년이라는 세월이 갖는 의미가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치료의 모든 과정, 즉 수술과 항암, 항호르몬 주사 및 항호르몬 제는 나의 뼈를 70대 할머니로 만들어버렸다.


올해가 쉰다섯이니까 앞으로 15년을 이대로 잘 유지하면 뼈 나이와 실제 나이가 같아지겠다? 그럼 정상이 되겠네? 하하하. 속으로 농담을 던지고는 내년도 검사 예약에 골밀도 검사를 추가했다. 골밀도, 네놈도 추적 관찰이 필요해.


골감소증뿐이랴. 크게는 불면증과 고지혈증, 작게는 위장 장애와 저질체력. 유방암 재발(또는 전이)을 피한 대신 맞닥뜨린 것들이다.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괜찮았다. 조심하면서 살면 되지. 완벽이란 없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지난 십 년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들과 함께한 세계여행의 끝에서 덜컥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착실하게 치료를 받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어둠에서 벗어나 더욱 신나게 살고 싶었다. 나만의 방식은 하고 싶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 그것이었다.



첫 책 『고등학교 대신 지구별 여행』을 출간했고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해마다 해외여행에 도전했고 여행 강의를 시작했다. 두 번째 책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을 출판함과 동시에 강소율여행연구소를 열었다.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걷기 모임을 운영했다. 여행과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을 만나 행복했다. 우리는 따뜻하고 느슨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아픈 몸으로도 참 재미나게 살았다. 괜찮은 인생이다.


유방암 이전이 ‘인생 1부’였다면 유방암과 함께한 십 년은 ‘인생 2부’였다.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 3부’의 페이지가 시작되었다!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또 어떤 일들을 시도할까? 내 사전에 적혀 있다, 시도는 언제나 옳다고.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