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 오일장날. 나는 여름 바지를 사러 갔다. 요즘 장마 전야라 꽤 더워졌다. 집에서 반바지를 입는다. 그런데 소파에 앉으면 허벅지 살이 닿는 부분에 땀이 찬다. 예전에 (과천 집에서) 식탁보로 쓰던 리넨 천을 꺼내 소파에 깔았다. 땀은 흡수가 되지만 뭔가 불편했다. 밤에 칠부 파자마 바지를 입고 앉으니 딱 좋은 거였다. 아하, 여름엔 반바지보다 얇은 칠부바지가 쓸모 있군!
장마 직전 해무로 가득한 세화 오일장 앞 바다
겨울과 봄엔 오일장에서 채소를 골고루 사다 먹었다. 단점은 최소 단위가 오천 원. 혼자인 내겐 양이 많았다. 빨리 먹어치우지 못하면 더워진 날씨에 무르기 십상이다. 이후 달라진 식자재 구입 패턴. 하나로마트에서 파프리카 하나, 오이 두 개, 양파 두 개, 이런 식으로 조금씩 산다.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오일장에 가도 장을 볼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일단 실내용 칠부바지를 고르고 시어머니께 보낼 갈치와 옥돔을 사면 쇼핑은 끝. 차를 주차해둔 곳이 마침 생선가게가 몰려 있는 바로 앞이었다. 몇 주 전에 냉동 갈치를 샀던 가게가 보였다. (생 갈치는 무지하게 비싸 침만 흘립니다) 이곳은 갈치와 옥돔, 고등어만 취급한다. 청년 사장님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그때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가장 두꺼운 갈치와 옥돔을 골랐다.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짱짱하게 포장 완료. 서비스로 청귤 주스를 하나 주셨다. 역시 장사 수완이 좋다니까.
어라, 그런데 저것은? 생선 가게마다 멸치가 한 소쿠리씩 담겨 있었다. 나는 슬쩍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요즘 멸치 철인 가요?"
"네, 딱 이 시기에만 나와요. 제철이니까 함 사보세요."
그런데 저 생멸치를 어떻게 해 먹지? 양 또한 많고요. 궁금한 것은 저쪽 사장님께 여쭤 보라네. 안 사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란다. 앗 찌찌뽕이닷. 사실 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러쿵저러쿵 물어보기가 미안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이모님! 여기 제 손님인데요, 멸치가 궁금하대요."
넉살 좋은 그가 덥석 나를 들이밀었다.
"이거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요?"
"젓갈도 담그고 국도 끓이고 튀겨도 먹고 조려도 먹지요."
젓갈? 초보 도민에겐 완전 무리입니다. 국과 튀김도 좀 부담스럽네요. 그럼 만만한 건 조림? 처음 제주에 왔던 겨울엔, 선뜻 생선을 사지 못했다. 생선을 무척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나에겐 오일장 쇼핑의 최고난도 코스랄까. 집에 비린내가 밸까 걱정스러웠고 혼자서 먹기엔 양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차츰 고등어부터 시작해 옥돔, 갈치, 한치 등을 사 먹기에 이르렀다.
특히 '제철이다, 요때만 나온다' 하면 욕심이 벌떡 일어났다. 오늘도 제철 욕심 발동! 조려 먹든 볶아 먹든 어떻게든 되겠지.
"제가 혼자라서요, 조금만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 삼천 원어치만 사쇼. 삼천 원이나 오천 원이나 별 차이도 없어."
한 소쿠리에 오천 원이었다. 그녀는 오천 원어치 같은 삼천어 치를 담아주었다. 생선을 산 날은 마음이 바빠진다. 되도록이면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얼른 옷 가게로 달려갔다. 오오 맘에 드는 실내용 칠부 몸뻬 발견! 옆에 걸린 오부 반바지도 괜찮네. 두 개에 만 원. 후다닥 돈을 냈다. 장에 왔으면 군것질도 해야 하는데. 빙떡이 제격이지. 빙떡 여섯 장에 오천 원. 멸치가 상할까 봐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검은 비닐봉지를 열어 멸치를 꺼냈다. 아까 주인장에게 들은 대로 칼로 머리를 자르면서 쭉 빼내니까 내장이 딸려 나왔다. 손질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았다. 싱싱한가 보군. 몸통만 남은 멸치는 냉장고로 안착했다. 저녁에 무 깔고 조려야지. 혹시라도 주방에 비린내가 날까 봐 싱크대 안팎을 여러 번 닦았다.
이제 빙떡과 청귤 주스를 먹을 시간. 처음엔 빙떡을 무슨 맛으로 먹나, 저것도 부침개라 할 수 있나, 무시했다. 그러나. 속는 셈 치고 먹어본 빙떡은, 심심하고 고소하고 담백했다. 무 볶음과 메밀전의 조화가 내 입맛에 찰떡이었다. 지금은 흐뭇하게 잘 먹습니다요. 두세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멸치가 궁금했다. 급기야 작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열댓 마리만 구웠다. 소금에 절이지 않아서인지 살이 부슬부슬거렸다. 이래서 튀기거나 조리라고 했구나. 기다려라, 멸치야. 이따가 제대로 요리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