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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9. 2023

제주도민 장점,  지치도록 숲길을 걷을 권리

바다보단 숲!

제주도민에서 경기도민으로 변신한 지 '아니 벌써' 세 달이 넘었다. 정확히 작년 11월 2일에 김포행 비행기를 탔으니까.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가고 싶었다. 2021년 12월 제주살이를 시작했다가 미친 바람이 부는 겨울을, 냉랭한 집에서 벌벌 떨었기 때문이다. 


제주살이가 생각보다 고생스러웠다고 떠들고 다니니, 다들 의아해한다. '아니 배가 불렀네, 그 좋은 제주도에서 1년씩이나 살았는데 뭐가 그리 힘들었다고?' 머릿속 생각이 다 보여요. 맞는 말이다. 설마 힘들기만 했을라고. 좋은 것도 많았지. 내가 시니컬한 편이라 자꾸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고난'을 강조하게 된다.



자, 그럼 좋았던 것을 하나씩 풀어보겠다. 제주도 1년 살기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곶자왈사람들'이었다. 제주의 독특한 자원인 '곶자왈'을 보호 보전하는 환경단체, 곶자왈사람들. 회비만 내는 후원회원 경력이 10년이 넘었다. 약 올리듯 매달 문자로 공지가 날아왔다. 숲길을 걷는 모임에 나오라고. 숲길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지만 그림의 떡일 뿐. 경기도에서 어떻게 참여를 하냐고오요? 너무 아쉬웠다. 나는 자칭 제주 러버, 해마다 한두 차례는 여행을 가는 편이다. 허나 모임 날짜를 맞추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곶자왈이란?

흙이 적고 암괴가 두껍게 쌓여 지하수를 가두는 지형. 한겨울에도 푸른 생태계의 허파이자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숲. 보호야생 식물이 자라는 식물 다양성의 보고.

현무암 돌과 바위 지형 위에 온갖 나무와 풀이 엉켜 자라는 숲. 여름엔 시원하고 습하며 겨울엔 따뜻하다.

꿈꾸던 제주 1년 살기를 시도하면 마침내(!) 나도 찐 회원으로 일 년 내내 걷기 모임에 참여할 수 있을 터. 기대를 품고 제주로 떠났다. 2022년은 아직 코로나가 진행 중인 시기, 평년 기준 3월부터 모임을 시작한다는데 어째 공지가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곶자왈사람들 홈페이지를 밥 먹듯 드나들며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실무자를 상당히 귀찮게 하는 회원이었다, 죄송합니다.

두둥, 4월 중순 모임이 열렸다. 



"2022 사람과 자연을 배우는 곶자왈 아카데미_ 제주를 만나다"


1. 제주 지질 교육 ‘제주 지질 180만 년의 역사’

■운영내용: 지질 교육(20강)

■운영기간: 2022년 4월 28일~8월 7일 목 오후 7시~9시/일 오전 9시~오후 1시

■교육장소: 용두암, 이호해안, 비양도, 김녕리 해안, 산방산, 비양도, 곶자왈 오름 등

■모집대상: 제주 지질에 관심 있는 성인

■참 가 비: 35만원(곶자왈사람들 회원, 다른 강의 중복 신청자 30만 원)


2. 일상탈출 힐링프로그램-제주숲을 걷다

■운영내용: 제주숲길 등(15회)

■운영기간: 2022년 4월 14일~7월 21일 매주 목 오전 10시~오후 4시

■교육장소: 무릉곶자왈, 서중천숲길, 신례천숲길, 고살리숲길 등

■모집대상: 자연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 가 비: 15만원(곶자왈사람들 회원, 다른 과정 중복 신청자 12만 원)


3. 숲을 읽다, 숲을 그리다 ‘제주숲지도’

■운영내용: 제주숲지도(숲지도 그리기, 숲관찰, 식물 기본/ 15강)

■운영기간: 2022년 4월 16일~7월 9일 매주 토요일 오후 1시~4시(4월 10:00~16:00 운영)

■교육장소: 금산공원

■모집대상: 자연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 가 비: 15만원(곶자왈사람들 회원, 다른 과정 중복 신청자 12만 원)


2. 일상탈출 힐링프로그램 제주숲을 걷다

1회 차: 4/14(목) 무릉곶자왈

2회 차: 4/21(목) 선과 가는 길

3회 차: 4/28(목) 사려니숲길

4회 차: 5/5(목) 서영아리습지숲길

5회 차: 5/12(목) 서중천숲길

6회 차: 5/19(목) 저지곶자왈

7회 차: 5/26(목) 삼다수숲길

8회 차: 6/2(목) 도순천숲길

9회 차: 6/9(목) 노로오름숲길

10회 차: 6/16(목) 신례천숲길

11회 차: 6/23(목) 물보라길

12회 차: 6/30(목) 해맞이숲길

13회 차: 7/7(목) 창고천숲길

14회 차:7/14(목) 족은바리메숲길

15회 차: 7/21(목) 고살리숲길



욕심이 불타올랐다. 세 개 모두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완성해야 할 원고(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2022 출간)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고 체력도 한계가 있는 법. 고심 끝에 2번 숲길 걷기만 신청했다. 총 15회, 매주 제주도 구석구석에 숨은 숲길을 걸었다. 


나 같은 한시적 이주민 외에 진짜 도민 회원님들과도 친해졌다. 제주 시내로 놀러 가 따로 만나기도 했다. 다들 나를 불쌍히 여겼다. 왜냐면 항상 집결지에서 우리 집이 제일 머니까. 보통 도민들은 가능하면 제주 도심에 산다. 그게 일상생활을 하기에 편리하다. 당시 사람들이 코로나에 지쳐 제주도로 몰릴 때라 연세의 선택지가 적었다. 나는 공항에서 한 시간이 걸리는 동쪽 마을, 구좌읍 행원리에 집을 얻었다.  



여럿이 걷는 건 그것대로 즐거웠다. 이야기를 나누며 전문가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혼자 가기 힘든 험하고 깊은 숲길이 많았다. 모임이 아니었다면 절대 시도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길을 몰라서 가려야 갈 수가 없다. 사려니숲길, 삼다수숲길, 해맞이숲길은 나 혼자 여러 번 다시 걸었다. 사실 내가 수십 번 걸은 곳은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동백동산'이었다. 동백동산의 봄여름 가을겨울을 샅샅이 느껴보았다. 



교래자연휴양림, 한라생태숲 숯모르숲길, 머체왓숲길, 머체왓소롱콧길, 서우봉둘레길, 절물자연휴양림 장생의숲길 등도 내가 혼자 걸은 길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걷는 건 스스로 허락할 수 없었다. 날씨가 좋으면 달려 나가야 했다. 의외로 맑은 날이 드물었다. 겨울엔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초속 10미터 이상의 돌풍이 항시 분다. 집 밖에 나가면 바로 머리카락 뒤집어지는 광녀로 돌변. 야외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름엔 알다시피 지독하게 습하고 덥다. 역시 바깥 활동이 만만치 않다. 봄가을만 반짝 걷기 좋은 시기였다. 


날씨 말고도 받쳐줘야 할 조건이 있었는데, 강소율여행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수업과 모임, 원고 쓰기 등과 겹치지 않아야 했다. 일을 몽땅 그만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맘 편히 마냥 걸으러만 다닐 형편이 될 리가 없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기한 안에 할 일이 많은데 날씨가 좋다, 못 나간다. 일을 다 마쳤는데 날씨가 나쁘다, 또 못 나간다.


제주도에서 1년을 살면 제주도 전체를 모두 가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동쪽에서 서쪽 끝이나 남쪽 끝은 상당히 멀다. 자동차로 편도 90분이나 그 이상 걸린다. (대중교통은 가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리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왕복하면 운전만 세 시간, 중간에 서너 시간을 걸으므로 총활동량이 어마 무시하다. 저질체력인 나는 피곤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혼자여서 대신 운전해 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제주도를 세로로 반 잘라 오른쪽 지역만 주로 다녔다. 왕복 운전 두 시간 이내 거리였다.


이러저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숲길을 자주 걸으려고 애썼다. 나는 바다를 그리 즐기지 않는 부류였다. 아마 수영을 못 하는 게 큰 이유일 것이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은 잠깐 보면 멋있어도 오래 머물고 싶진 않았다. 무조건 나무가 많은 그늘 길이 내 취향! 그러니 늘 숲으로 향할 수밖에. 제주 1년 동안 다리가 아프도록 실컷 숲길을 걸었다. 그건 언제나 나를 손쉽게 행복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숲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좀 오버고 큭큭큭, '바다 대신 숲을 주세요!' 쯤이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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