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Oct 29. 2022

집으로 돌아갈 짐을 쌉니다

돈을 포기하니 쉬워졌어요

갑자기 떠나게 되었다. 다음 주에 '안녕'이다. 이 집의 연세 계약일은 12월 15일. 하지만 작년에 제주도에 오자마자 겨울 추위에 날마다 뺨을 얻어맞았다. 나는 11월 말쯤 돌아가려고 진즉에 마음먹었다. 즉 겨울이 닥치기 전에 발을 빼기로 했다. 그게 더 앞당겨졌다. 11월 2일 다음 주 수요일, 그게 나의 컴백홈 날짜.


실은 지난주에 과천 집에 다녀왔다. 외국에 있는 아들의 여친이 오랜만에 집에 오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비 며느리이지만 서로 얼굴을 몇 번 보지 못했다. 국제 커플은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다. 여친이 오신다면 엄마는 이유 불문하고 날아가야 한다. 둘이 어찌나 꿀이 뚝뚝 떨어지던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참 좋을 때다.


아이들과 며칠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이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살림을 정리하는 데 적어도 2주일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작년 겨울에 들여놓은 침대며 소파, 테이블, 전자레인지 등을 처분해야 했으니까. 풀옵션이 아닌 집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물건들을 새로 장만해야 했다. 그걸 하나씩 정리하자니 머리가 아팠다.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가 한꺼번에 살림을 구입해 주는 게 가장 좋은 '제1안'이었다. 그러나 아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게 웬일이여?? 코로나 특수를 누렸던 제주 열풍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는 볼 집이 없더니만 지금은 세입자가 없다! 제1안은 물 건너갔다.


'제2안'은 중고로 팔기. 물건이 한두 개라면 중고 거래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트럭이 필요한 침대와 소파는 팔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고 그 외 몇 푼 받지 못할 작은 살림들이 여러 개였다. 물건 하나를 팔려면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지 잘 안다, 해봤으니까. 여기저기서 전화 오고 문자 오고 날짜를 바꿔달라 가격을 깎아달라...


아 세상 귀찮은 것이다. 게다가 귀차니즘을 증폭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드디어 나의 베트남 여행기 '그래서, 베트남'이 인쇄를 시작했단다. 다음 주에 실물이 나올 거라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2020년에 출간 직전이었던 책이 코로나로 미뤄진 지 3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다음 주, 다음 주라. 무조건 빨리 돌아가야겠다! 마음은 이미 육지로 달려갔다.


나는 깔끔하게 '제3안'을 결정했다. 무료로 주기. 물론 아깝지 않을 리가 있나. 비록 비싸고 좋은 것은 아닐지라도 모두 새 물건이었다. 혼자서 깨끗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상태는 최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저기에 무료 나눔 한다고 알리기도 번잡스러웠다. 나는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짐 정리를 끝내고 싶었다. 집주인에게 살림을 놓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사는 내내 불친절했던 집주인은 유일하게 흔쾌히 오케이를 내렸다. 본인으로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잖우? 새살림을 무료로 주고 간다는데 그쪽에서야 땡큐겠지. 나도 번거로움을 덜었다. 노트북을 놓고 쓰던 테이블이며 거실의 소파, 특히 전자레인지 등은 이사 전날까지 필요하다. 미리 치우면 사실 매우 불편하다. 나는 돈 대신 살림을 처분하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로 했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즉시 다음 주에 돌아갈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었다. 큰 살림이 해결되었으니 1주일이면 충분히 짐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비행시간에 맞춰 자동차 탁송도 예약을 마쳤다.


   


이제 작은 짐들을 정리할 차례. 굳이 가져가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먼저 추려내었다. 휴지통, 전기난로, 플라스틱 의자, 튜브, 그릇 등등. 작은방에 모아놓고 동네 단톡방에 올렸다. 필요한 분들에게 무료로 드리겠다고. 마침 한 분이 한꺼번에 전부 가져가셨다. 한 달 살이로 내줄 집을 꾸미는 중이란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잘된 일이었다.


어제 우체국에 가서 박스를 몇 개 사 왔다. 다행히 다음 주까지 날씨는 따뜻할 예정이다. 당장 입을 가을 옷 몇 장만 빼놓았다. 다른 옷들은 모두 박스에 담아 택배로 부쳤다.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 며칠 전부터 이불을 하나씩 빨아놓고 있다.


수요일에 가니까, 오늘을 제외하고 토일월화 4일이 남았다. 이제 슬슬 냉장고를 비워야지. 남아있는 양파 몇 개와 호박, 계란을 열심히 먹어야겠다. 다음으로 부엌과 화장실을 정리해야 한다. 이게 또 은근히 잔 물건이 많다. 화요일엔 짐을 다 차 안에 집어넣고 집 청소를 해야 한다.


제주 일 년 살이의 소회를 써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짐 정리에 여념이 없음. 아마도 느긋하게 감상을 늘어놓을 여유가 없을 것 같음. 마이 홈으로 완전히 돌아가면 그때나 가능할 것인가?        

이전 20화 말타기 도전, 결국 실패한 승마 레슨기 2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