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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Sep 14. 2022

말타기 도전, 결국 실패한 승마 레슨기 2편

말타기 대신 얻은 것

어느 날, 코치들이 모두 바빠서 팀장님이 강습을 해주었다. 나는 '심봤다!'를 외쳤다. 팀장님이야말로 '훌륭한 코치'였다. 남들보다 느린 나를 위한 맞춤 설명. 귀에 쏙쏙 들어오고 이해가 쉽도록 재미나게, 계속 칭찬하고 응원하면서. 끊임없이 격려하며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녀는 수업 시간 내내 온전히 내게 집중했다. 이전 코치들과 할 때는 지겹고 힘들기만 했던 시간이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녀와 세 번 레슨을 했다. 할 때마다 발전하는 게 느껴졌다. 조금씩 자신이 생겼다. 나름 계획도 세웠다. 봄에 10회를 받고 가을에 10회를 받으면 얼추 기초는 잡히겠지? 그럼 언젠가 외승을 나갈 수도 있겠구나.




나는 남은 4회 수업을 팀장님과 하기로 약속했다. 드디어 나에게 딱 맞는 스승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승마장 측은 내게 팀장님을 배정하지 않았다. 아니 팀장님도 승낙했고 손님이 원하는데 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팀장님도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모습이었다.


승마장 내부의 복잡한 사정이야 내가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강습료를 냈으니 그에 걸맞은 강습을 받을 받고 싶을 뿐. 제주도 승마장의 시스템이 원래 이러한 지, 이 승마장만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미숙한 코치들의 실험용 마루타가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도 내 돈 내고 말이다.


나는 팀장님에게 수업을 받을 수 없다면 레슨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승마장 측은 다른 코치를 붙여주겠다며 나를 회유했다. 그 '다른 코치님들'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거든요. 하나 마나 한 수업들. 적나라하게 말해서 시간 낭비, 돈 낭비일 뿐이었다.


남들은 나에게 야무져 보인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헛똑똑이에 가깝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싫은 소리를 대놓고 하지 못한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한계까지 몰려야 그때서야 대드는 스타일이랄까. 평소엔 참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은 순간이 오면 나중에 단호해진다. 한마디로 좀 늦게 발동이 걸리는 편이다. 아들은 나의 이런 성격을 가끔 못마땅해한다.


"엄마, 그때 그 말을 했어야지! 만만하게 구니까 자꾸 당하는 거야."


세 명의 코치들이 불성실하게 시간만 때울 때, 두고 보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깐깐하게 지적했어야 했다. 1도 모르는 승마라는 세계 앞에서 나는 쫄았던 것 같다.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주눅 드는 것. 그게 아직도 극복해야 할 나의 숙제였다.


믿음이 가지 않는 코치와 수업을 이어가는 것도, 중단하는 것도 쉬운 선택지는 아니었다. 즐겁자고 시작한 승마가 이토록 불편한 상황이 될 줄이야. 하지만 이미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나머지 4회 레슨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다. 승마장 측은 환불은 안 된다고 무작정 레슨을 받으라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화가 나서 조목조목 따졌다. 세 명의 코치의 불성실함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대하게 넘긴 것에 대해,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승마장 측의 무례함에 대해. 참을 만큼 참았고 계속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어쩌면 환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남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이 다시 나를 찾아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레슨비를 생각하면 속이 바짝 탔다. 제주 생활의 쓰디쓴 수업료라 생각하고 잊어야 하나? 담판을 하고 며칠 뒤 승마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환불을 해주겠다는 거였다.


그들도 속으론 나의 항의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승마 도전이었다. 결국 실패한 승마 레슨이었다. 그러나 얻은 게 있었다. 바로 사람. 비록 3회밖에 수업을 못 받았지만 스승님이었던 팀장님과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같이 숲길을 걷고 밥을 먹었다. 우리 집에 초대해서 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인연이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어진다. 제주살이가 끝나고 나중에 제주를 찾는다면, 만날 사람이 생겼다. 그녀가 있는 제주라면 언제고 다시 가고 싶을 것이다. 승마장에서 말타기 말고 친구를 얻었다. 뭐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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