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내내 재봉틀을 붙들고 산다. 무리한다 싶으면서도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자꾸 만들어야 할 목록이 생기니까. 시작은 커튼이었다. 좁은 빌라에 살다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커튼이 필수였다.
우리 집은 3층이라 앞 동 고층에서 훤히 내려다보인다. 안방 통유리창으로는 하늘과 작은 도로와 맞은편 단지 아파트가 보인다. 자려고 누우면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일단 급한 대로 안방과 아이 방 커튼을 주문했다. 불면증 환자가 자야 할 안방은 불빛을 차단할 암막 천으로 골랐다. 아이 방은 파란색 바탕에 커다란 하얀 꽃이 그려진 천이다. 배송된 커튼을 달아 놓으니 한결 아늑하다. 그러고 보니 거실이 또 걸린다. 옆에 붙은 건물 3층 사무실에서 서로 마주 보이는 까닭이다. 처음엔 거실 커튼만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항암치료받을 때 모자를 3개 만들었더랬다. 그 모자들을 번갈아 잘 쓰고 다녔다. 그러다 삘 받아 재봉틀까지 사버렸다. 한동안 식탁보를 만들고 바짓단 줄이기도 여러 번 해보았다. 때문에 직사각형으로 4면만 박아서 늘어뜨리는 커튼은 충분히 할 만해 보였다. 공주 풍으로 주름을 많이 달 것도 아니고 직선 박기만 하면 되었다.
에고, 그것이 1인 공장의 시작이었다. 우선 단골 원단 전문 쇼핑몰에서 커튼 천을 골랐다. 옅은 회색 바탕에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리넨 천이다. 커튼봉과 고리, 핀도 필요했다. 배달된 천을 보니 이런, 회색이 아니라 누런 톤이다.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일단 반만 만들어 달아 보기로 했다. 12마를 샀으니 6마만 사용하는 셈이다.
오랜만에 재봉틀을 꺼내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먼저 천을 3마씩 2장을 재단했다. 너비 150센티에 길이 270센티. 그것을 두 장 박아야 한다. 위 단은 세 번, 아래 단은 두 번씩 접어서 다린 뒤 시침핀을 꼽았다. 양 옆은 풀리지 않는 마감이라 한 번만 접어서 박으면 된다.
드디어 재봉질 시작이다. 천이 워낙 크다 보니 생각보다 힘이 든다. 왼손으로 늘어지는 천 잡아끌랴, 오른손으로 박히는 쪽 잡고 있으랴, 눈은 바늘에서 한시도 뗄 수가 없다. 잠깐 딴짓하면 바로 비뚤어지니까. 집중을 해야 하니 눈도 뻑뻑하고 허리도 아프다. 내가 이걸 왜 시작했대? 한 장을 해 놓고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장을 해 놓았다. 다음은 전체를 싹싹 다릴 차례. 두 장을 다리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다림질까지 마치니 하루가 다 갔다. 내가 또 사서 고생을 하는구나.
밤에 남편에게 봉을 달아 달랬다. 고리를 끼워 걸어 놓으니 커튼 반쪽 완성! 역시 약간 어두운 느낌이다. 그래도 휑하던 거실이 한결 따뜻해 보였다. 아무래도 나머지 반은 아이보리 색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훨씬 환해지겠지. 같은 디자인의 아이보리 색으로 6마를 더 주문했다. 두 가지 색을 반반씩 섞어서 만들 요량이었다.
이렇게 되니 누런색 6마가 그대로 남네? 비싼 천을 놀릴 수는 없으니 에어컨 커버와 쿠션 커버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아, 큰일 났다. 양재 본능이 또 발동되었다. 사실 이전에는 홈패션의 세계를 전혀 몰랐다. 재봉틀을 사용할 줄도 몰랐고, 양재를 배워 본 적도 없었다. 가장 다루기 편한 재봉틀을 사서 그냥 내 맘대로 만들어 본 것일 뿐. 내가 천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리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정말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너무도 많아~
다음날은 에어컨 커버에 도전했다. 초보 재봉사에게 입체적으로 뒤집어씌우는 커버는 엄두가 안 났다. 대신 끈으로 묶는 간단 버전으로 결정. 에어컨의 뚜껑 부분을 먼저 만들었다. 그다음 기다란 직사각형 4개를 따로 만들었다. 역시 싹싹 다려 놓았다. 요것들을 뚜껑과 연결해 박으면 된다. 이거 하는데 또 하루가 갔다.
세 번째 날은 네 개의 천을 묶어줄 끈을 만들고 다는데 종일 걸렸다. 모두 24개의 끈이 필요했다. 네 번째 날은 남편 방 커튼을 만들었다. 거실 커튼처럼 4면만 간단히 박는 스타일이다. 다섯 번째 날은 베개 커버 하나, 쿠션 커버 하나, 주방 창문 밸런스를 완성했다.
나는 아예 재봉사로 취직을 해버렸다. 하나를 하고 나면 또 하나를 하게 되고 그러면 또 할 게 나오고...... 이게 의외로 중독 증세가 있다. 저녁때가 되면 허리도 아프고 목도 뻐근하고 눈도 침침해진다. 그런데도 천이 눈에 보이면 멈춰지질 않는다.
아직도 나머지 거실 커튼 반을 만들어 달아야 한다. 쿠션 커버와 베개커버도 몇 개 더 필요하다. 지금 이렇게 공장 가동을 잠깐 멈춘 이유는? 주말과 휴일이 끼어 주문한 천이 아직 배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글 쓸 짬이 난다. 좀 쉬기도 하고 말이지.
하나하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신이 난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참 재밌다. 돈만 주면 척척 새것을 얻을 수 있는 소비의 시대. 수공 작업은 오히려 반전의 매력이 쏠쏠하다. 어떤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 그것을 즐기는 것.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의 온기를 품은 ‘특별한 무엇’이 되는 것. 완성품이 썩 멋들어지지는 않아도 그 과정만으로 행복하다. 내가 내 삶을 주도하는 느낌이랄까.
한편으로 내 몸을 직접 움직이는 작업은 피곤하고 힘들다. 생각보다 중노동이다. 이걸 업으로 한다면 정말 고된 일이겠구나 싶었다. 1주일 내 재봉틀과 씨름하다 보니 말로만 듣던 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이 떠오른다. 공순이라 불렸던 그녀들. 내 고종사촌 언니들도 중학교만 졸업하면 공장으로 가는 수순을 밟았다. 가난한 소도시의 어린 처녀들은 그렇게 공순이가 되었다. 드르르 노래 같은 재봉틀 소리에 박노해의 시 ‘시다의 꿈’이 생각났다. 결혼 초만 해도 책장 어딘가에 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 있었다. 잦은 이사 끝에 없어진지도 모르게 없어져 버렸지만. 십수 년 만에 다시 ‘시다의 꿈’을 찾아 읽어보았다. 나와 그이들의 작업을 감히 비교할 깜냥도 되지 않지만 여전히 가슴이 시리다.
시다의 꿈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둑 잘라
피 흘리는 가죽 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치는 공단 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로
새벽별 빛나다.
나의 1인 공장은 재미와 고통을 동시에 선사한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암환자에게는 균형 잡기가 정말 중요하다. 기우뚱기우뚱 양팔을 쭉 펼치고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걸어가기. 재밌게 즐겁게 그러나 너무 무리하지는 않게. 재봉질을 하던 글쓰기를 하던 일상은 균형 잡기를 배우는 놀이터다. 그런데 이러다 초고 쓰기는 언제나 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