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커피 끊기 한 달을 마쳤다. 눈에 띄는 장점도 단점도 없었다. 다만 두통이 줄어든 것 같아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11월, 나는 평소처럼 약간의 원두를 사서 커피를 내려마셨다. 두통이 다시 생겼다. 역시 커피 때문일까? 확신하기엔 일렀다. 그저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났다. 커피를 마셨던 날은 잠을 통 못 자는 것이다. 유방암 치료 후 생긴 불면증으로 인해 나는 평소 약을 먹고 잔다. 한마디로 커피를 마시면 그 약발이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매일 마실 때도, 지난달 처음 커피 끊기를 시도할 때도 딱히 수면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하루에 한 잔 정도 최소한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었으니까. 커피 끊기 두 달째에 이르러 갑자기 잠을 못 자다니. 이것도 단순히 우연일까? 나는 그 후 일주일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두통은 여전했고 잠은 돌아왔다. 일단 두통의 원인이 커피가 아님은 확실했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통이 오는 것 같았다.
문제는 겨우 일주일에 한 번의 커피가 과연 불면을 불러오느냐였다. 정확한 실험이 필요했다. 낮에 마신 날 두 번은 다 잠을 자지 못했다. 마지막 세 번째 실험은 아침에 마시기. 지난 수요일 아침밥으로 통밀 식빵과 바나나, 커피를 먹었다. 식사 시각은 오전 9시. 설마 아침에 마시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인가.
이번엔 쉽게 잠이 들었다. 아침 커피는 괜찮구나 안심하려던 차에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자다가 새벽 2시에 깨어 해가 뜨도록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고 낮이고 간에 나는 절대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는 결론? 아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을 수도 있잖아요, 먹고 싶어지잖아요!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커피를 안 먹을수록 몸은 더욱 커피에 민감해지나 보다. 적어도 내 몸은 이제 커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 달의 공백이 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인정. 더 이상의 실험은 하지 않는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의 다섯 단계다. 나는 커피와 강제 이별을 받아들이는 세 가지 감정을 겪고 있다. 부정, 분노 그리고 수용.
나는 삼십 대까진 커피를 마시지 않는 부류였다. 사십 대에 여행을 하면서부터 커피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1세대 바리스타에게서 핸드드립의 맛을 알았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각기 다른 커피를 마시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의 커피 취향을 발견했다. 종착지는 신맛이 강한 에티오피아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려마시기. 그동안 커피와 행복했다. 그러나 안녕.
10월에 집에 있는 허브티를 모두 마셨다. 이번엔 꽃 차를 좀 사볼까 하다가 찬장을 뒤졌다. 어머나 우리 집엔 여전히 차가 많았다. 남편이 중국 여행에서 사 온 것과 아들이 베트남 여행에서 사 온 것까지 아직 뜯지 않은 차들이 구석에 모셔져 있었다. 종이에 싸여 있던 세 종류의 베트남 차는 유리병에 옮겨 담았다. 하나는 특히 향이 좋아 하루 종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다음 날은 쥐똥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중국차를 우렸다. 남편에게 무슨 차인지 물어보았지만 기억할 리가 있나. 이건 향도 맛도 둥굴레차와 비슷했다. 구수했다. 남편이 자기 입맛에 딱 맞는다고 좋아한다. 등산 갈 때도 보온병에 담아간다.
느닷없이 커피와 이별하게 되어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가벼운 실험이었을 뿐이었다. 평생 끊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커피를 많이 사랑했을까. 어쩌리. 기다렸다는 듯 몸이 거부하는데 도리가 있나. 나는 얼른 차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커피만큼 차의 세계도 흥미로웠다.
차는 특히 저녁이나 밤에 마셔도 수면에 아무런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게 가장 맘에 든다. 넓고 깊은 차의 세상으로 가는 문턱에 섰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이 맞았다. 커피와 이별은 아쉽지만 차와 만남이 기대된다. 집에 있는 걸 다 마시면 어떤 차를 사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