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Feb 27. 2024

두 집 살림이 웬 말이냐?

따로국밥 가족이 사는 법

이럴 줄 알았다면 제주로 떠나지 말 것을. 2022년 나는 제주에서 야심 찬 일 년 살이를 시작했다. 아들이 결혼을 언급한 때가 하필 내가 제주도로 내려간 다음이었다. 괜한 욕심을 부렸나 후회가 되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우리를 만난 후 3월, 알래스카로 돌아갔다.


아들과 그녀는 약혼자 초청 비자를 준비했다. 비자가 나오기까지 1년이 걸릴지 그 이상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래 걸릴수록 아들의 애가 타겠지만. 우리 부부는 은근슬쩍 비자가 빨리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자식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될 테니까.


아들 곁에서 맛있는 것도 실컷 해주고 알콩달콩 재밌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오히려 떨어져 사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되돌리기엔 늦었다. 자기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들은 큰소리를 쳤다.


일 년 동안 아들은 생전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서 살았다. 매달 이런저런 연유로 내가 집에 가지만 집안일을 챙겨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제주 생활도 만만하지 않은 차에 이중으로 살림을 감당할 순 없었다. 두 사람이 알아서 하라고 나는 모른 척했다. 남편이야 애초에 가사를 신경 쓸 사람이 아니다. 자연스레 재택근무를 주로 하던 아들이 살림을 맡았다.   


대충 이런 식이다. 그릇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마지못해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돌아다니는 먼지뭉텅이에 숨을 못 쉴 때까지 버티다 로봇청소기를 돌린다. 음식은 시켜 먹고 사 먹고 가끔 아들이 요리를 한다. 타국 생활을 해보았기에 간단한 음식은 만들 줄 안다. 한 마디로 두 기계가 하는 일을 제외하고 나머진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아들은 아빠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한다고 불평했고 남편은 아들이 잔소리가 심하다고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부자가 티격태격 지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우연찮게 내가 두 남자만의 추억을 만들어 준 셈인가?   


나는 남편과 아들이 제주에 자주 오길 기대하며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었다. 웬일이야, 편히 잘 수 있는 집이 있는데도 오지 않더라? 아들은 겨울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딱 두 번 왔을 뿐이다. 남편 역시 공사다망하신 관계로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8월 말, 나는 제주에서 집으로 여름휴가를 왔다. 오랜만에 6박 7일의 긴 시간을 내었다. 모른 척했던 집안 꼴이 엉망이었다. 나는 부엌을 정리하고 떨어진 생활용품을 사다 채웠다. 화장실 변기의 누런 때와 벽에 핀 곰팡이를 닦아내었다. 이불부터 침대 시트까지 침구류 전체를 빨았다. 집안 청소도 꼼꼼히 다시 했다. 일주일이면 도루묵이 되겠지만.  


아들은 휴가를 내어 여친을 만나러 갔다. 알래스카로 날아가는 경유지 시애틀이 만남의 장소였다. 나는 감귤색 메이드 인 제주도 손수건과 화장품 몇 가지를 들려 보냈다. 서로 얼마나 보고 싶었을꼬. 비자는 아직도 진척이 없었다.        


여름이 지나자 제주살이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예정보다 달을 당겨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멋모르고 12월에 입도했다가 혹독한 겨울 날씨에 질린 탓이다. 곰팡이로 뒤덮인 방과 고장 난 보일러, 눈 튀어나오게 비싼 LPG 가스요금. 거기에 미친 듯이 부는 찬바람. 나는 또다시 제주에서 겨울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남은 두 달, 9월과 10월엔 부지런히 숲길과 오름을 걸었다. 제주살이를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실컷 걷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러나 온라인 모임을 진행하고 권(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그래서, 베트남)을 마무리하느라 생각만큼 즐기지 못했다. 일 년을 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넘칠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여름엔 목을 죄는 습기와 더위, 허리까지 자란 풀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뱀이 무섭다. 못 돌아다닌다. 겨울은 겨울대로 날아갈 듯한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다. 제주도라고 해서 어디나 따뜻하진 않다. 내가 살았던 동쪽 마을은 유독 추운 곳이었다. 결론, 역시 못 돌아다닌다.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절반의 봄가을만 남는다. 나는 새삼 아쉬워서 갔던 길도 다시 걸었다. 아직 못 가본 곳들의 리스트를 날마다 하나씩 지워나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못 잊을 제주살이가 끝나가고 있었다.   


귀가일은 <그래서, 베트남> 출간에 맞춘 11월. 드디어 '컴 백 홈'이다! 더불어 '컴 백 투 코리아'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들의 여친. 그녀가 우리 집에 와서 한 달을 지낸단다. 제주도에서 따로 부친 짐들이 거실에 쌓였고 들고 온 여행 가방을 미처 풀기도 전에, 그녀가 왔다.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그녀와의 동거, 괜찮을까?          




대문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연재 브런치북>

화요일: 얼떨결에 시엄마

토요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이전 02화 아들의 아내가 될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