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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05. 2024

예비 며느리와 동거하기 1편

할 만하던데요?

제주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지 이틀. 내일이면 아들의 여친이 들이닥칠 텐데. 나는 아직 이삿짐을 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 손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꼭 자랑하는 말투 같지만 절대 자랑이 아닙니다요) 세 명이 살기에 비좁은 소형 빌라가 되시겠다. 집을 살 때 평수가 작아서 꽤나 망설였다. 부부 둘이 생활하기는 괜찮지만 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심히 불편할 것 같았다. 결국 크기만 빼고 다른 조건이 모두 마음에 드는 이 집을 선택했다.  


책상이 필요한 내가 제일 큰 안방을 갖고 코딱지만 한 방 두 개는 남편과 아들이 차지했다. 유방암 수술과 치료를 받은 이후 내게는 지독한 불면증이 생겼다. 코를 고는 남편과는 진즉에 방을 따로 쓴다. 달랑 세 명이어사람 수대로 방이 필요하답니다. 설상가상, 당분간 식구가 늘게 생겼으니 어떻게 감당한다?


처음엔 에어비앤비를 얻어줄까 생각했다. 하필 우리 동네에 마땅한 숙소가 없네요? 조금 떨어진 다른 동네로 보내버려? 그럼 아들이 따라가야 하잖아, 여러 가지로 번거롭구나. 그냥 우리 집에 있어라. 멀리서 온 사람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챙겨줘야 하지 않겠나. 그녀 역시 가능하면 집에서 지내고 싶단다.  


단 예비 시아버지가 결혼도 안 한 예비 며느리와 좁은 집에서 생활하기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럴 만도 하지. 남편은 서로 편하도록 자기가 시가에서 자겠단다. 그녀 대신 아빠를 보내고(?) 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잘 수 있는 방은 내 방뿐이므로 안방을 내주었다. 따라서 내 짐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졌다. 일단 거실 구석에 가방과 박스를 쌓아놓았다. 입을 옷만 꺼내어 임시로 쓸 작은 방에 넣었다. 할 수 없다,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어수선한 상태로 지낼 수밖에.


한국에 머무는 기간은 한 달. 두 사람은 부산의 친구(영어교사 시절 동료) 결혼식에 갔다가 남도여행 일주일, 그 후 베트남 여행 일주일, 다른 볼 일 며칠. 아이들은 놀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실제로 집에 머문 시간은 열흘 남짓이었다. 게다가 점심과 저녁은 거의 밖에서 먹고 오기 때문에 나는 아침밥만 차려주었다.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 커플은 아침식사 준비가 끝나야 겨우 일어났다. 나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통밀빵에 야채와 계란 등을 곁들였다. 일부러 서양식으로 만들었냐고요? 노우. 우리 원래 이렇게 먹는답니다. 평소 식단 그대로다.


그녀는 내가 내려주는 에티오피아산 원두커피를 좋아했다. 알래스카 커피가 얼마나 맛없는지 나도 잘 안다. 아들이 졸업하던 해 여름, 우리는 알래스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아들이 공부하던 교정을 둘러보고 셋이서 곳곳을 여행했다.


어디 가서 커피를 시켜도 한결같이 쓰기만 한 커피가 나왔다. 그것도 맛있게 쓴맛이 아니라 토하고 싶은 쓴맛이랄까. 장희빈이 먹고 죽은 사약이 절로 생각났다. 아니 커피에는 쓴맛 외에 고소한 맛, 단맛, 신맛이 어우러져 있다고! 커피에 관한 한 알래스카는 불모지였다.

    

그녀는 커피에 다양한 맛, 특히 신맛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침마다 원두를 가는 소리와 퍼지는 향기에 즐거워했다. 매번 정성껏 아침을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기쁨이니 맛있게만 먹으라고 했다. 그녀는 항상 남김없이 접시를 비웠다. 같이 밥을 먹으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먹는 야채와 계란을 사 온 생협에 대해, 원두 가격에 대해, 한국 친구의 결혼식에 대해,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해, 보여주고 싶은 알래스카의 멋진 장소들에 대해, 제주도 생활에 대해, 다녀온 베트남 여행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제가 이어졌다.            


한 번은 "당신을 뭐라고 부를까요? 이름을 불러도 되나요?"라고 묻기에 "아니, 그냥 Mom이라고 불러다오" 대답했다. 아무리 서양 며느리라지만 시엄마 이름을 부르는 것까지는 허용할 수 없었다. 이래 봬도 내가 한국 시엄마다. 크크크.


아들이 통역하느라 바빴을까요? 아닐까요? 나는 첫날부터 공표했다. "통역 그딴 거 하지 라!" 대화를 직접 주고받지 못하니까 세상 답답했다. 맞든 틀리든 어설픈 영어로 말했다. 정 안 되겠으면 콩글리쉬나 한국말도 섞었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를 때만 아들이 도와주었다.


의외로 의사소통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언어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나는 이미 여행에서 배웠다. 때로는 눈빛과 표정, 몸짓으로 진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심지어 각자 자기 나라 말을 하는데도 알아듣는 기적이 종종 벌어졌다. 오 신기해라. 그래서 내가 여행을 사랑하지.


그녀를 에어비앤비에 보내지 않길 잘했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한솥밥을 먹는 동안 우리는 가까워졌다. '예비'라는 단서가 붙은 애매한 관계에서 친구 비슷한 사이로 발전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시어머니 노릇을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남의 집 귀한 딸이자 내 집의 소중한 손님에게 어찌.


하지만 모든 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대문 사진 출처: 픽사베이


<연재 브런치북>

화요일: 얼떨결에 시엄마

토요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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