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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19. 2024

부담 없는 생일선물이란

며칠을 고민했다. 생일 선물을 뭘로 줘야 하나?? 아들의 여친 즉, 예비 며느리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생일을 같이 보내기 위해 아들은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냈다. 아이들은 시애틀에서 상봉하기로 했다. 아들이 가는 김에 나도 선물을 보내고 싶었다.


대단한 걸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마음'을 전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들은 굳이 선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직 결혼 전이었고 모른 척 해도 상관없겠지. 짧게나마 한 집에서 지냈던 정이 깊었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일단 여행 가방에 넣어가기에 크거나 무겁지 않아야 했다.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무언가면 좋겠다.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는데 눈에 차는 게 없었다. 예비 며느리의 생일선물을 고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군. 


혹시나 싶어 '예비 며느리에게 주기 좋은 선물'이라고 초록창에 쳐보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포스팅이 예비 며느리가 예비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선물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선물이라 하면 무조건 며느리 쪽이 드리는 상황인가 보다. 아니 예비 시엄마는 선물을 받기만 하고 주는 존재는 아니란 말인가. 


설마 요즘 시대에 유교 냄새 팍팍 나는 사고방식만 있을까? 나는 검색어를 '예비 며느리 생일선물'로 바꾸어 보았다. 그제야 원하는 내용이 두어 개 나왔다. 역시 반대의 경우에 비할 수 없이 적은 숫자였다. 이번에도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무려 명품 백이나 현금, 백화점 상품권을 준다고라? 성의를 오직 돈으로 해결하는 느낌이다. 주는 사람이야 재력이 있어 그렇다치자.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아니 좋아하려나? 모르겠다. 적어도 내 정서엔 맞지 않았다.


다음 대안은 케이크나 꽃다발을 보낸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정도가 무난하지. 그러나 그것들은 가방에 넣어갈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결국 내게 초록창은 무용지물이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우리 동네엔 과천 현대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기념품점이라면 질 좋은 선물 거리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서울대공원을 걸을 겸 선물도 고를 겸 미술관으로 향했다. 몇 년 전 기념품 가게 사업자가 바뀐 뒤로 규모가 크게 줄었다. 다시 말해 물건이 다양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나마 도예가의 찻잔이나 화가의 스카프, 손수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 제주살이 할 때 해녀가 수놓아진 손수건을 이미 선물한 적이 있구나. 손수건은 아웃. 스카프도 취향에 맞을지 의심스럽고요. 찻잔도 별로네. 



문득 이왈종 화가의 그림을 인용한 제품이 눈에 띄었다. 부채와 파우치였다. 알록달록 밝고 화사했다. 샘플 부채를 휘휘 부쳐보았는데 가볍고 시원했다. 파우치는 색깔이 쨍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나는 두 개를 모두 샀다. 이분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활동하는 작가였다. 잡은 게 어떻게 또 제주도 물건일까. 제주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는 듯하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때, 괜찮은 것 같니?"

"응, 예쁜 걸로 잘 골랐네요." 

"어떤 게 걔 마음에 들겠니?" 

"두 개 다." 


욕심쟁이 아들은 선물을 몽땅 챙겼다. 아들 맘에 들었으니 그 아이 맘에도 들겠지? 일주일 내내 고민했던 선물 고르기가 끝났다. 물건만 놓고 보면 대단치 않지만 그걸 선택하기까지 나는 정성을 들였다.  


통 큰 한국 사람들 눈에는 너무 소소한 (또는 하찮은) 선물일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래도 일반적인 한국 시엄마의 범주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내 아들이 오케이 한 걸로 통과. 아들이 사랑하는 그녀도 좋아해 주길 바랄 밖에. 


사실 내가 가능한 미루고 싶었던 역할이 '시어머니' 자리였다. 나나 내 주변에서 바람직한 시월드를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또한 내가 너무 나이 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들이 (언젠가) 결혼하면 남이다. 신경 끄고 산다.' 이 정도의 원칙만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그려보진 않았다. 내게 시어머니 자리란 멀고 먼 일이었다. 그게 바싹 닥쳐올 줄이야.


아마 전형적인 고부관계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만나는 것 자체가 연중행사일 테니. 아니 연중행사만 되어도 다행일걸? 아들은 한국을 떠나 그녀의 나라에서 보금자리를 꾸릴 생각이었다. 가깝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멀기는 또 얼마나 먼지. 가기도 힘들고 오기도 힘들다. 


2022년엔 제주살이를 하느라 떨어져 지냈다. 다음 해인 23년, 웬만하면 집에서 아들을 챙겼다. 약혼자 초청 비자가 통과되면 언제 집을 떠날지 알 수 없었다. 먹고 싶다는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같이 치맥을 하자, 외식을 하자 하면 귀찮아도 먹기 싫어도 따라가 주었다. 뭔 치킨과 피자는 매주 먹자고 하는지. 덕분에 나는 자꾸 살이 쪘다. 아들을 위해 기꺼이 내 한 몸 희생했다(핑계 아님). 하하하. 



대문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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