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Mar 20. 2024

예비 사돈이 꽃다발을 보냈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꽃 배달 왔습니다."


주문한 적이 없는데 꽃 배달이라니? 의아한 채로 문을 열었다. 배달원 아저씨가 종이가방에 담긴 커다란 꽃다발을 내밀었다. 아니 누가 보냈지??? 남편이 카드를 얼른 펴보란다. 꽃봉오리 사이에 작은 카드가 하나 붙어있었다.



영어로 쓰여있다. 세상에, 아들 여친의 엄마가 보냈다. 알래스카에서 꽃다발을!!! 어머니의 날을 축하한다고 적혀있다. 며칠 전 아들이 미국 어머니의 날이 어쩌고저쩌고했던 게 떠올랐다. 우리네 어버이날처럼 어머니의 날을 기념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아이들이 알아서 하겠지.


아들이 독감으로 심하게 앓는 와중에 어버이날이 끼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았다. 딸을 가진 엄마들은 케이크를 먹었네, 용돈을 받았네, 자랑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독감이나 빨리 낫기를 바랐다. 솔직히 말해서 무슨 무슨 날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효도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내가 자식 입장에서도 엄마 입장이 되어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어머니의 날을 맞아 예비 사돈 어머니에게서 선물을 받는 건 상상도 못했다. 놀라움이 컸다. 기쁘면서도 한편 나도 뭔가를 보냈어야 했나? 하는 미안함이 생겼다. 미국에선 어머니의 날에 어머니들끼리도 선물을 주고받는 것일까? 아들의 여친이 미국인이긴 해도 나는 미국 문화에 무지했다.


부모의 심정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기를 원했다. 약혼자 초청 비자가 나와야 미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그때까진 아들이 결혼하다는 게 불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드디어 비자의 첫 단계가 통과되었다. 이변이 없는 한 8월까진 모든 과정이 해결될 거라고 한다. 


일이 빨리 진행될 줄 모르고 아들은 내일모레 알래스카로 가는 일정을 잡아놓았다. 재택근무와 휴가를 얹어 두 달을 있다가 온단다. 여친의 생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시애틀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다. 도무지 엉덩이가 들썩거려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쪽 엄마는 나보다 한결 마음이 편하겠네. 딸을 먼 나라에 보내는 게 아니라 사위가 내 나라에 오는 것이므로. 좋겠다. 부럽다. 어쩌겠나, 내 아들이 저리 가고 싶다는데. 자식이 행복하면 되었다. 대범하게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차츰 아래로 떨어지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에고, 차차 적응이 되겠지, 돼야지.



나는 꽃다발을 조심스레 풀어 화병에 담았다. 식탁에 놓고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제일 잘 나온 걸로 두 장을 골랐다.


"뜻밖의 선물을 받아 너무 놀라고 기쁩니다.

참 예뻐서 식탁에 놓아두었어요.

오래도록 보고 즐길게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도 얼른 만나 뵙게 되길 기대합니다."


짧은 답신을 적었다. 사진과 함께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영어로 번역해서 대신 전해달라고.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세상 여행을 시작했던 시절. 그때부터 나는 아들에게 일러주었던 것일까. 니가 원하는 곳을 향해 어디든 걸어가렴. 이제는 가르침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다. 엄마답게. 담담하고 단단하게.  




대문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이전 06화 부담 없는 생일선물이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