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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6. 2024

유부남이 된 아들

아들이 드디어 떠났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머나먼 알래스카로. 사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다. 다 자기가 스스로 준비했을 뿐.


아들은 연봉 협상을 새로 하고 회사 일을 마무리하느라 혼을 뺐다. 심지어 출국 전날 포항 출장을 갈 뻔한 걸 간신히 취소시켰다. 사이사이 틈을 내어 친구들과 지인들도 만났다. 나는 그저 먹고 싶다는 음식을 몇 가지 해주고 치킨 따위를 주문해서 함께 치맥을 먹어줬을 뿐(엄마의 역할은 오직 먹을 것 담당?).


오히려 나는 칭찬을 하루에 하나씩 해달라고 졸랐다. 생각보다 너무 일찌감치 엄마 그늘을 벗어나는 아들에게 받아내는 보상이라고나 할까. 일명 '옆구리 찔러 칭찬받기!' 밤마다 "아들, 오늘의 칭찬을 다오!" 하면 아이는 영혼 없는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못해 '엄마가 직장 다니지 않고 집에 있어준 것이 좋았다, 매일 아침 열심히 운동(걷기)을 잘한다, 오늘 내려준 커피가 맛있다, 등갈비 김치찜이 끝내준다' 등 며칠간 장단을 맞춰주었다. 출국 날이 다가올수록 여유가 없어 억지 칭찬은 곧 멈추었지만.


어느 날 아들은 현금 117,000원을 식탁에 올려놓더니 내게 12만 원을 송금해 달라고 했다. 은행 갈 시간이 없다며 흐흐흐 웃었다. 엄마 돈 3천 원 뺏어 먹는 맛이 그리도 좋았냐? 또는 고양이가 물범의 뺨따귀를 때리다든가 주접스러운 오리에게 자기 밥을 뺏긴다든가 하는, 동물 영상들을 둘이서 낄낄거리며 보았다.


자기가 맥주를 마실 땐 꼭 한 캔을 더 가져와 내 앞에 놓는다. 혼자 먹기가 싫은 것이다. 내가 살찐다고 거부하면 꼭지를 따서 내밀고는 '어허! 괜히 반항하지 말고 일단 잡숴봐! 잘 먹을 거면서 그래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결국 나는 푸하하 웃으며 맥주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식이란 스물여덟이나 되었어도 늘 엄마를 웃게 하는 존재였다.


나는 세계여행을 같이 했던 엄청난 사건보다 소소한 일상이 가장 그리울 것을 안다. 한편 '앞으론 웃을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한 시절이 지나갔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성인이 되어 떠나보내는 사이클을 완전히 돌았다. 남들이 예측하듯 대단히 굉장히 무지하게 서운하진 않다. 여행, 대학, 군대, 파병 등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일까???)


아들을 인천공항에 데려다주고 온 날은 덤덤했다. 다음날부터 서늘한 허전함이 몰려왔다. 나는 집부터 치우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아들이 쓰던 낡은 가구를 버려야 했다. 미뤄두었던 집 정리를 겸사겸사 한꺼번에 해야겠다.


이후 이사에 버금가는 작업에 돌입했다. 구석구석을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순간순간 아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떠올랐지만 방방마다 해야 할 일이 나를 불러댔다. 집이 깨끗해지고 넓어질수록 덩달아 우울감도 눈 녹듯 사라졌다.


어느덧 아들이 떠난 지 보름이 지났다. 아들 부부는 곧바로 혼인신고를 했다. 그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사돈 댁에서 간단한 파티를 열었다. 남편과 나는 영상 통화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결혼식인 셈이다. 아들, 진짜 유부남이 되었어. 축하한다! 예쁘게 잘 살아라!

   



대문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연재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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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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