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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pr 01. 2024

알래스카로 날아간 생일 카드

아들이 결혼한 후 첫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인데 미역국도 못 끓여주고 만날 수도 없다. 정말 이럴 땐 머나먼 외국에 산다는 게 안타깝기 짝이 없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생일 선물을 보내겠다고. 필요한 것도 없고 운송비도 비싸니 보내지 말란다. 너무나 합리적(?)이고 착한(?) 대답. 지 성격다운 반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서운했다. 나는 궁리 끝에 생일카드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래 봬도 작년 여름부터 그림 수업을 받는 몸이시다. 동네 문화센터 어반스케치 반에 다닌다. 뭐라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왕이면 생일 카드에 예쁜 꽃다발을 그려주고 싶었다. 실물 대신 그림으로 축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짜잔! 그리하여 탄생한 생일카드. 색연필을 사용했다. 물감으로 그리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고 색연필이라면 훨씬 만만했다. 백만 년 전에 생태세밀화를 배운 적이 있었다. 요즘엔 보태니컬 아트라고 하더라. 엎어치나 메치나 같은 말이다. 당시 수채화용 색연필로 채색을 했다. 나에겐 색연필이 낯설지 않은 재료였다.


얼마 전 소멸해 가는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쓰라는 문자가 왔다. 마일리지 몰에서 번듯한 걸 사기엔 애매한 액수였다. 나는 소소한 물건을 몇 개 골랐다. 작은 에코백과 색연필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실 수채화용 색연필이 아니라서 쓸 일이 있겠나 싶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줄까 했는데 이번에 색연필 덕을 보았다.


꽃 그림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하여 프린트했다. 그것이 이 그림의 원본이다. 보고 따라 그리는 건데도 하루 종일 걸렸다. 멋모르고 두툴두툴한 종이에 그리느라 고생 좀 했다. 색칠하기에 적합한 재질이 아니더라고요. 집에 두꺼운 스케치북이 있는 줄 모르고 엉뚱한 종이에 그렸다네.


녹색 계열이 세 개 밖에 없어 잎사귀 색깔이 단순한 게 아쉬웠다. 쩝쩝. 그렇지만 환한 꽃은 마음에 든다!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 온 세상이 꽃밭 같았다. 내 인생의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 이렇게 빨리 부모 곁을 떠날 줄이야. 만나기도 힘든 머나먼 알래스카로 갈 줄이야. 허전함은 엄마의 몫이고 둘이 잘 살면 해피엔딩 아니겄어요?


빨리 날아가라고 EMS로 카드를 부쳤다. 우편료가 25,260원! 카드 한 장에 이만 원이 넘으니까 굉장히 비싼 편이다. 그나마 카드라서 그 정도였다. 물건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배송비가 기본 10만 원이 넘는다네? 아들이 극구 말린 이유를 알겠구만유. 선물은 마다 챙겨놨다가 아들이 오는 가을에 한꺼번에 줄 생각이다. 


아들, 생일 축하한다!!!

엄마는 항상 니 편인 거 알지?!




대문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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