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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7. 2024

사돈의 취미는 꽃다발 보내기?


미국에서 또 꽃다발이 왔다. 받는 사람에 내 이름, 보내는 사람 주소지는 알래스카. 아무 날도 아닌데 아들이 비싼 꽃다발을 보냈을 리가 없다. 사돈이 또 보냈나?? 작년 미국 어머니날에도 사돈에게서 커다란 꽃다발을 받았다.   



일단 꽃다발을 식탁 위에 놓았다. 와 엄청 크다! 거대하다! 지난번에 꽃다발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자신이 주문한 것보다 작다며 속상해하셨다고 들었다. 이번엔 정말, 정말 풍성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크리스마스도 한참 지났고 새해 선물이라기엔 벌써 2월이고.



간단하게 쓰인 카드엔 별다른 힌트가 없다. 이번에도 사진을 찍어서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알래스카 시간은 저녁 6시경. 바로 답이 왔다.


"꽃이 다양하고 엄청 크네, 예쁘고 품격 있다! 근데 무슨 꽃다발이여?^^ 이유는 알고 받아야지. 크리스마스 축하 꽃다발인데 늦게 온 건가?^^"


"그냥 보내고 싶었대. 사람들한테 꽃 보내는 걸 원래 좋아한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뜻이래. 항상 엄마 생각한다고."


"멀리서 매번 진짜 고맙고 엄마가 기분 좋게 깜짝 놀랐다고 전해줘.^^"


즉 이유 없이 느닷없이 꽃 선물하기가 사돈, 그녀의 취미였다. 벌써 두 번째다. 아들을 떠나보낸 마음을 헤아리시는 걸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이른 나이에 머나먼 곳으로 장가를 보냈으니. 솔직히 말해서 아들이 알래스카로 가는 것보다야 며느리(이 단어를 쓸 때마다 오글거린다)가 한국으로 오는 게 훨씬 좋다. 어떤 엄마가 안 그러겠냐고요. 그러나 모든 건 아들의 결정이므로 난 할 말이 없다. 아쉬움은 안으로 들이고 축복만 할 수밖에.


얼마 전에 며느리가 갑자기 수술을 받았다. 결혼하자마자 벌어진 일이라 남편과 나도 걱정이 많았다. 사돈이야 오죽하겠는가. 가까이 사시니 여러모로 챙겨주시는 것 같았다. 무탈히 회복하고 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제 사돈도 여력이 생겨 나에게까지 신경을 썼나 보다. 고맙기도 해라.



나는 꽃다발을 풀어 꽃병 세 개에 나누어 꼽았다. 큰 건 식탁에 두고 작은 것들은 거실과 내 방에 두었다. 이것도 물론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서 아들에게 보냈다. 아들은 다시 사돈에게 전달하겠지.



얼마 전 하노이 사파 여행에서 사돈과 며느리의 선물을 사 왔다. 조각천을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 가방과 연꽃 차. 가방은 우리나라 전통 조각보랑 느낌이 비슷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수공예품 중에서 골라 보았다. 그러니까 사실 내 취향이다. 하하하. 깔끔한 잎차는 루 모녀 둘 다 선호하는 품목이란다.


사 놓고도 사돈 마음에 들지 확신할 수 없어서 보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의 취향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했거든. 남의 취향을 그것도 사돈의 취향을 맞추기란 느무 어려운 숙제여. 그러나 꽃다발로 인해 미루기엔 미안한 지경이 되어 버렸구먼? 내일 당장 우체국으로 달려가야겠다.   


사돈과 우리 부부는 (놀랍게도)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작년 10월에 아들이 알래스카로 간 후 혼인신고를 했다. 그날 사돈의 집에서 친지들과 함께 간단한 파티를 한 게 실질적인 결혼식이 되어버렸다. 그다음 단계는 한국에 와서 마찬가지로 간소한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얼떨결에 시엄마가 된 셈이다. 나에게 며느리란 단어가 영 어색할 수밖에. 하긴 결혼식을 했어도 여전히 닭살이 돋을 것 같긴 하다. 아들은 영주권 이전에 내주는 여행허가서가 있어야 한국에 올 수 있다. 빨라야 올가을이나 될까. 아들이 말하길 요즘 알래스카 주정부의 일 처리는 캄보디아 국경 사무소나 다를 바 없단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모자가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3개국을 여행하던 시절(아들 나이 열두 살), 캄보디아 국경을 육로로 넘어갈 때였다. 웃돈을 요구하는 국경 사무소 직원과 기싸움을 해야 했다. 약간의 달러를 집어주면 빨리 통과시키고 안 주면 괜히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물론 내 사전에 웃돈이란 있을 수 없는 일. 결국 포기한 직원이 순순히 들여보내 주었다.


지금은 여행허가서와 영주권을 빨리 받기 위해 온갖 연줄을 동원하는 중이라고 한다. 대대로 알래스카 토박이인 사돈이 힘을 보태는 모양이다. 아들 너도 이젠 세상 물이 들었구나. 흐흐흐. 미국은 주마다 문화와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다는데 특히 알래스카는 섬처럼 본토와 떨어진 곳이다.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간다.  


어쨌든, 남편에게서 언제 꽃다발을 받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째 사돈으로부터 더 자주 꽃을 받는, 받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선물하기를 즐기는 사돈을 만난 덕에 나도 선물을 챙기는 습관이 드는 것 같다. 앞으론 독수리눈으로 주변을 훑고 다녀야겠어. 부담스럽냐고? 아니 오히려 기대가 된다. 아들을 보낸 덕에 새롭고 귀한 인연을 만났으므로.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대문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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