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 받아들이기

삶이 내준 성적표

by 소율


고백하자면 마흔다섯 해를 살면서 암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이런 환경은 행운이지만 반면에 약점이기도 했다. 경각심이라곤 전무했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셋 집 걸러 한 집 정도는 암환자가 있을 정도인데 나는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 20여 년 전쯤에 둘째 이모가 위암으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워낙 오래되어서 거의 잊고 지냈다. 위암과 유방암은 별 상관관계가 없었고 말이다.


할머니, 엄마, 아부지 모두 장수 체질이다. 할머니는 잔병치레 없이 백 살을 넘게 사셨다. 아부지도 당시 일흔아홉이지만 건강하게 일을 하셨다. 언젠가 살다 보면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남들 하나씩 있는 암보험도 들어놓지 않았다. 걸릴 위험이 별로 없는 심각한 병에 대한 대비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질병을 보장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다. 그래서 실비보험만 들었다. 그나마 이것이 있어 부담을 덜었다.


사실 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축이었다. 나의 관심사는 주로 ‘마음’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둔하기 일쑤였다. 체격도 왜소하고 근력도 약하고. 어릴 때도 고무줄놀이보다는 공기놀이를 즐겼다. 고무줄 위로 폴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부럽긴 했다. 그래도 앉아서 하는 공기놀이가 더 재밌었다. 아니면 방바닥에 엎드려 책에 코를 박고 있거나,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결혼하고 나니 진짜 인생을 맛보라는듯 거센 파도가 몰려왔다. 연애할 때의 그는 분명 내편이었는데 남편이 된 그는 완전히 남의 편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부모님 편, 남들의 시선 편이었다. 평소 안하던 효자 노릇에만 집중했고 남편 노릇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시댁은 아들을 등에 업고 며느리(+손자)를, 즉 한 가정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우리 가정은 시댁에 속한 세트 메뉴 중 하나였다. 그것도 곁다리 사이드 메뉴. 나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에 빠진 느낌이었다. 남편과 나는 수없이 싸움을 반복했다. 그렇게 16년. 소금에 절인 배추같은 내 모습이 보였다. 원래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미치도록 괴로울 때마다 마음공부를 찾아다녔다. 마음에 관한 책이라면 열심히 찾아 읽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온갖 강좌를 들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 카운슬러 과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마음을 챙기려고 애를 썼다. 잘 살아내기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는 내게 암을 불러왔던 거다. 결국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임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몸의 병보다도 마음에 우울증이 올까 봐 걱정했었다. 마음을 다스리려 늘 노력하며 살았기에 이제껏 잘 해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거나 아니면 너무 애를 쓴 게 문제였거나.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니었거나. 어쨌든 삶은 내게 ‘유방암 환자’라는 성적표를 던져 주었다. 냉정한 중간평가였다. 어쩌겠나, 싫든 좋든 넙죽 받아 들 밖에.


병원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성모병원을 택했다. 아는 의사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랫동안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니, 교통 편한 곳이 낫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자동차로 25분쯤이면 도착하고 집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있으니까.


수술은 2주 뒤로 잡혔다. 지금 돌아보니 겉으로는 태연했어도 실제로는 멍한 상태였다. 수술 날짜를 뻔히 듣고도 1주일 뒤로 착각을 했다. 그냥 ‘다음 주’라고만 알고 있었다. 아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날짜가 되어도 입원하라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전화를 했다. 이런, 그 주가 아니라 그다음 주였다.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당황했던 게다.


또 하나. 평소의 나였다면 유방암에 관한 책부터 찾아 읽었을 터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에 대한 책부터 들고 파는 게 내 습성이다. 이때는 수술받기까지 책 한 권 뒤져보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만 해보았을 뿐, 이상하게 책을 읽어 볼 생각을 못 했다. 이건 나답지 않았다. 역시 내면으로는 꽤나 충격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수술 날까지 어떻게 2주일씩이나 기다리냐고 야단이었다.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집에서 기다리면 답답할 테니 제주도에라도 며칠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바라보는 자신이 답답해 못 견딜 것 같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어쨌거나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같이 가준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혼자 조용히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근데 생각 정리가 안 되더라. 정리는커녕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 그냥 금릉 바닷가에서 바람만 쐬다가 돌아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