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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Jun 29. 2018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법

그 자리에 있었다

<2017년 10월  3일>



올해치의 여행,

인도네시아 20일을 다녀온 뒤,
기대보다 못했던 여행이 아쉬워서 다시 제주도로 날아가 2박3일을 지내다 돌아왔다. 

이제는 더이상 미루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
일단 세탁기를 돌리면서 일상을 돌리기 시작했다.
캐리어 정리하는 김에 옷장속 안 입는 옷까지 정리하고 각종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여행 전날 깨져버린 아끼던 유리 머그컵을 대신할 새 유리컵을 주문하고 고기, 채소, 과일을 사다 냉장고를 채워 놓았다.

더운 나라와 남쪽 섬에서 돌아오니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작년에 입던 청바지를 찾는데 이상하게 안 나온다.
그러고보니 여행가기 전 빼놓았던 목걸이도 안 보인다.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어디다 뒀을까, 
분명 어디에다 잘 두었을 텐데...

바지가 급했던 나는 결국 새 바지를 하나 샀다.
역시 바지 기장이 길어서 줄여야 입는다.
재봉틀을 꺼내어 전기를 꼽으려니 재봉틀에 딸린 전선이 또 없다.
평소에 넣어두었던 서랍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온다.

혹시 나 없던 사이에 도둑이라도 들었나!
목걸이는 생일선물로 받은 거라 잃어버리면 안 된다규 ㅠㅠ 
입던 바지에 쓰던 전선까지 도대체 어디 간 것이냐??? 
심술궂은 도깨비가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구 이게 뭐지???

본격적으로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큰방 , 작은 방, 옷방에, 부엌, 화장실, 베란다, 창고까지.
옷장 안, 서랍 속, 싱크대 안, 장롱 위, 신발장까지.
구석구석 여러번 살펴 보았다.
그래도 없. 다.

짜증이 밀려왔다. 
화가 났다.

문. 득. 
어제 일이 생각났다.
산책길에 만난 빛내림이 알려준 진실.

"이미 전부 가졌다!"

어쩌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물론 내 기억이란 절대 믿지 못할 성질의 것이지만) 목걸이건 전선이건 청바지건 딱히 따로 챙겨둔 적이 없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냥 같은 곳에 두었을 터이다.
즉 목걸이는 악세서리함에,

전선 역시 늘 넣어두던 서랍 안에,

청바지는 내 옷장 안에.
 


다시 차분하게 악세서리함을 꺼냈다.
목걸이칸이 아닌 반지칸에 반짝 하는 것이 보였다.
반지들 사이에 얌전히 놓여있는 목걸이 한 줄.
그제야 떠올랐다.
목걸이들끼리 잘 엉키어서 반지칸에 넣어두었다는 사실이.

이번엔 전선을 넣어두던 서랍을 열었다. 
재봉틀이 흰색이라 전선도 당연히 흰색일 거라 믿고 아까는 흰색만 찾았다.
재봉틀에 딸린 전선은 사실 검은색이었다.
몇 년을 써왔던 검은색 전선을 새삼 흰색이라 착각하다니.
전선은 내가 넣어뒀던 그대로 거기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바지.
다시 내 옷장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러나 청바지는 없었다.
여기가 아니면 다른 데다 놓아둘 리가 없었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 이 바지 입을만큼 입었다고 재활용통에다 넣었었구나.
올 가을엔 이쁜 부츠컷으로 하나 사입어야지 했었구나.
내가 어제 새로 산 바지가 부츠컷이었다.
이미 생각대로 하고 난 뒤였다.

정말 보이는 대로 믿은 게 아니라 믿는 대로 보였던 것이다.
검은색을 흰색이라고 믿으니 뻔히 있는 검은색이 안 보였고,
목걸이를 반지라고 믿으니 멀쩡한 목걸이가 반지로 보였다.


도대체 오십평생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도 못 보고 있어도 없는 줄 알고 살았을까!
내가 그리도 얻기를 원하던 많은 것들이 어쩌면 이미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던 나보다 실제의 나는 더 충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더 아름답고 더 능력있고 더 사랑스럽고 더 강하고 더 따뜻하고 행복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이유있는 오만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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