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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석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의 진짜 의미

by 소율

<2017년 10월 4일>


추석날 아침 7시 반 길을 나섰다.
늘 가는 서울대공원,
집에서 청계산 자락을 지나 15분쯤 걸으면 대공원 뒷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가면 동물원 입구를 거쳐 호수가를 한바퀴 돈다.
다시 동네로 넘어가는 청계산 입구로 돌아와 집까지 오면 약 1시간이다.
운동이라기보다는 천천히 걷는 산책에 가깝다.

추석날 아침에 한가롭게 산책이라니.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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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전후로 열흘씩 시댁에 묶여 있기도 했었고,
하루 종일 음식 만들고 먹고 치우고를 반복하는 일차원적인 시간들과
멀다는 핑계로 내 부모님께는 언감생심 갈 수도 없었고,
어쩌다 가게 되어도 늘 부부싸움을 했었고,
명절 내내 불면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며느리 노릇을 하는 동안에는 명절이 즐거웠다거나 편안했다거나 하기는 커녕 그저 나쁘지 않은 적 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평생 이 노릇에서 벗어날 날이 올까 싶었다.

새옹지마.
세월이 흘러 지금은 꿈같은 명절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 전에 이미 인도네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명절에 본가에 가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내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역할을 그만 두자 남편 역시 달라졌다.

며칠전 미리 장을 풍성하게 보아다 놓았다.
고기, 생선, 과일, 채소까지 골고루 사다 놓았다.
추석이니 전도 빠질 수 없다.
반찬가게에서 금방 부쳐놓은 전을 만원어치 사니 혼자 먹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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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안 챙겨도 되니 훨씬 부담이 없다.
내가 먹고 싶은만큼만 조금씩 해먹고 있다.
반찬은 딱 두 가지,
고정메뉴 김치 더하기 보조 메뉴 고기 혹은 생선 혹은 채소.
가볍게 조금씩만 먹는다.
홀로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니 홀로일상 역시 즐기고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의 진짜 의미가 바로 이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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