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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Sep 16. 2024

현실

벽에 기대어, 벽을 만나서

6주가 지나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뚫린 하늘을 내 마음에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들고 체력이 많이 저하됨을 느꼈다.


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일들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몸은 쓰임에 따라 정직하게 그들의 일을 하고 있었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오른쪽 다리는 그 정직한 시간을  정확히 반영해 근력이 많이 빠졌고, 다시 걷기 위해 재활선생님의 지도아래 월스쿼트를 시작했다.


무릎은 피부로 덮인 자신의 공간에서  근육과 뼈의 틈새를 파고들며 수술로 엉망이된 물리적  상처를 치유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상처 치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근력을 키우라고 한다. 물리적 기능 중 하나인 근력은 물리적만으로만 하기에는 부족한 그것의 힘을 마음의 힘인 의지력에 도와달라 손을 내민다.


재활을 하면서, 마음과 몸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마치 지금 내 무릎이 근손실로 걸을 때마다 슬개골이 맞지 않아 삐걱되는 것과 같았다.  마음은 이미 100미터 달리기를 끝냈지만, 몸은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였기에 그 격차에 벽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벽에 기대어 월스쿼트 중이다.


통증을 참고  안간힘을 내어 다리를 쫙펴고 한걸음씩 걸었지만 실제로는 절뚝거리고  있었고, 마음은 분명 잘걷고는 것이 확실한데,  몸은 그러하지 못했다. 노력해도  내힘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 걷는게 힘드니 일상생활에서 한계를 마주했다. 많은 것을 소화해냈던 일상은 다시 불러올 추억이 되었다.

 벽에 기대어 월스쿼트를 하며, 벽에 부딪히며, 그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벽을 만난적이 있었던가? '벽을 만날 겨를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녹아 살았던 것 같다. 무엇인가에 부딪힌 생각이 들었을 땐, 그냥 현상을 유지하며 시간에 몸을 싣기도 했고, 또 적극적으로 앞장 서서 해결하려고도 했다.

지키기 위한것이면 기다리면 되지만, 고치거나 바꾸려면 움직여야한다.


내가 기대고 있는 이 벽은, 다음 돋음을 위해 자신을 빌려줄뿐 이다.


저 벽뒤엔 내가 예전에 누렸던 활기찼던 일상과 에너지, 의욕이 있을텐데, 그리고 그것은 내 삶에서 점프업 하기 위한,  뒤도 안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치열함이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소중한지 몰랐던, 어쩌면 그래서 내 곁을 떠난  평범한  일상이다. 그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을 되돌리기 위해  나는 지금 공을 들이고 있고, 빼앗긴것인지 내곁을 떠난 것인지 모를 그 벽너머의 평범한 예전의 나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마음과 같이  나아지지 않는 내 다리는 월스쿼트를 하며  벽을 만나, 벽에 기대어 내가 기댄 그 벽을 넘으려한다.

저 벽을 뛰어넘던지, 부수어 버리던지 어떻게든 뚫어야, 아넘어야 한다.   

  

그막힌 벽에 등을 대고, 다리 내민다. 다리를  쫙펴고 발앞꿈치를 들고 참을 만한 통증의 범위에서 무릎을 구부려 스쿼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버텨본다.  수술한 무릎이 바들바들 떨린다.  오늘은 30도까지, 내일은 40도까지, 이 각도가 점점 늘어나고 통증이 사라질때 저 벽뒤의 봄날은 다시 날 찾아올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날 나는 되찾은 봄을 만끽하고, 더 빛날 그 봄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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