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이 아닌 겉(신체)이 아파 좋은 점은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속(마음)이 아프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내장기관이 아프면 낯빛으로는 드러나긴 하지만 그 또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명백히 그 아픔이 드러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약점을 숨기고 싶은 사람한테는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실보다 득이 되는 경우도 많다.
"겉은 멀쩡해가지고 왜 저래?"
겉은 멀쩡한데 하는 행동이 영 달갑지 않은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 사람이 마음이 아파 행동이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겉이 멀쩡한 사람의 상식밖의 행동은 잘 수용되지 않는다. 겉모습은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을 판단할 때 근거가 된다.
그래서 깁스를 하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누가 봐도 명백히 아파 보이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당장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한다. 행동이 느려도 이해하고, 문을 통과할 땐 문을 잡아주거나 또는 계단을 오를 때 휠체어를 잡아주는 등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한다.
물론 가끔 속상한 일이 있기도 하다.
휠체어 생활을 하던 시기, 병원진료를 받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 플랫폼서비스'로 택시를 호출하고 병원 앞에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호출한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병원을 지나치는 택시를 여러 대 그냥 보냈다. 마침 기다리던 택시가 들어오고 있어서 택시를 타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택시 기사가 서행하며 내 앞을 지나가면서 운전자석의 창문을 내렸다. 그러더니 "휠체어 못 실어요. "라는 말을 남기고 그냥 가버리는 것 아닌가! 그날 나는 호출한 택시가 아닌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올 수 있었지만 마음의 속상함은 감출 길이 없었다. 명백히 보이는 다리 아픈 환자라는 약점으로 도움의 손길도 많이 받았지만, 때론 보이는 것으로 어떤 행동을 시도도 못해보고 거부당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인 경험들이 쌓이면 결국 약점을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하게 된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이었다. 엄마는 명절 때가 되면 경기도에서 2살, 4살, 6살인 우리 셋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미리 명절 준비를 하기 위해 서울 큰집에 갔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여러 차례 승차 거부를 당했던 엄마는 어느 날 나와 동생에게,
"너희 둘은 저기 나무뒤에 숨어있다가 엄마가 손짓하면 나와."라고 말씀하시고 막내만 데리고 택시를 잡았고, 뒷좌석 문을 열면서 나무뒤에 있는 우리한테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그때 숨어서 엄마 손짓만 기다리다가 흔드는 손을 봄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동생 손을 잡고 뛰어나와 엄마가 잡은 택시를 탔다. 몇 년간 '작전'처럼 이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아이 셋을 데리고 택시를 탄다는 것은, 엄마에게는 반복되는 승차거부를 불러오는 약점이었고, 엄마는 여러 차례 부정적인 경험을 하신 후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승차거부를 피하기 위해 약점인 우리를 숨겨놓고 택시를 잡는 것으로 말이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술자리에서 분위기에 취해 혹은 위로받고 싶어서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것이 병이든 가정사이든 사생활이든, 그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로 위로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나 약점을 보인다는 것은 그것을 보이지 않았을 경우 경험하지 못할 다른 에너지를 경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 약점이 나의 사례처럼 숨길 수 없이 명백히 노출되는 경우도 있고, 나의 선택에 의해 노출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것이든 드러난 약점은 대조적인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에너지가 긍정일지 부정일 지는 미지수이다.
숨길 수 없는 '사랑'처럼 아프다는 게 명백하게 드러나 숨겨지지 않던 나의 약점은 '속상함'과 '도움의 손길'이라는 대조적인 두 가지 에너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긍정의 에너지가 더 충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드러내서 보여야 상반된 대조적인 에너지 중 어떤 에너지가 나에게 더 크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더라도 숨길 수 있는 약점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은 약육강식이라고 불리는 사회에서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끙끙 앓아 속이 썩기 전에 드러낸 약점이 더러는 긍정의 에너지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더나아가 당장은 별 영향력이 없는 아주 작은 긍정에너지도 이리저리 전해져서 굴리고 굴리다 보면 아주 큰 긍정에너지가 되어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참 양날의 검이다. 그리고 그 검의 향방에 대한 키는 사용하는 자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