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리 와서 거울 보고두 다리를 쫙 펴고, 똑바로 서 보세요. 오른쪽 무릎이 안쪽으로 휘어져 살짝 'ㄱ'자로 보이죠?"
자세히 보니 나의 오른쪽 무릎은미세하게 휘어져 있었다. 조금의 통증은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잘 걸었기 때문에 애써 어떻게 걷는지 의식하지 않았다.수술로 막 걷기 시작한 돌쟁이 아기가 되었던 나는 걷지 않았던 짧은 시간 제대로 된 걷는 법을 잠깐잊었다.아니 잊었다기보다 제대로 걸으면 통증이 있으니 제대로 걷는 것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을 다시 찾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술한 지 몇 개월이 지나고, 수술 후 처음 베이징 여행길에 올랐다. 다치기 전보다 신경 쓸 것이 많았지만 갑작스러운 수술로 이전에 계획했던 여행도 취소한 지라 아이와 함께하는 이번 베이징 여행은 걱정에 이어 설렘도 뒤따랐다.
오랜시간 움직임을 제한하며 겹겹이 다리를 싸맨 보조기는 마치 자유를 찾아 나아가려는 나의 시간을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보조기를 풀어헤치고,국경절 베이징으로떠난 나는 거리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씩씩하게 걸으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으며, 만리장성까지 오르며 자신감에 가득 차서돌아왔다.
돌아와서 2주 만에 찾은 재활치료날, 여행이라는 미션까지 잘 수행했으니 이제 재활치료를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제 헤어질 때가 다되었는데... 다리가 완전히안 펴지네요."
(나)"엇, 안되는데... 멋지게 헤어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요. 하하."
멋지게 이별하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이라는 짤을 머릿속에 그리며, 재활 선생님과의 이별을 고하는 상상을 하고는속으로 씩 웃었다.그 웃음은 선생님과 내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난 뒤 나에게서 점점멀어져갔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결국 나는 '재활치료'와의 이별이 아닌 재활치료의 마지막을 상상한 내 생각과이별하며, 다시 찾아올지 모를 그 생각을 저 멀리 하늘로 날리고 있었다.
오랜 보조기 착용으로 근육 생성이 늦어지면서 다리가 살짝 안쪽으로 휘었고, 또 이것이중력을 받을 때 다리가 완전히 펴지지 않는 것에 영향을 주면서 무릎 안쪽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보조기, 근육, 통증은상관관계를 가지며아직도온전한 걷기를 방해했다.
(선생님)"서서 걸을 때 다리를 완전히 다 펴야 무릎 안쪽 통증도 사라져요. 안 그러면 계속 통증이 남으니, 아프더라도 다리를 쫙 펴고 걷도록 해야 해요. 아직 5% 정도 다리가 덜 펴졌어요."
이날 재활치료를 받고, 다시 근력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5%의 부족함은 당장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 전의 상태로 최대한 기능을 끌어올려 현재의 건측다리(수술하지 않은 다리)와 그 쓰임을 최대한 나란히 맞춰놓아야 두 다리는 동반자로서 건강하게 오랜 시간 균형을 맞춰 함께 할 것임을 알기에미세한 차이인 5%를 극복하는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별을 생각하고, 끝인 줄 알았던 치료는 미세한 5% 앞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게 되었다. 다음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시작 앞에서 김연아 선수의 말이 생각났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마지막 1도, 이 순간을 넘어야 그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중에서
나의 현재 다리상태는 5%의 부족함을 보유한 겉보기에는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자세히 보고 느껴야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신체의 일부인 다리도 이렇건대, 세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겉보기에는 같아 보일까? 하지만 같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는 시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끝까지 끌고 가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그리고 5%의 차이가 당장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나를 인지하면서, 때로는 다른사람을 통해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또한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볼 수 있기에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열린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그 길을 열어 두고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