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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Oct 21. 2024

재활시작의 알림

3가지 미션

수술한 지 2일 차 일요일 아침, 담당 선생님 회진이다.

(선생님)"자, 오늘 붕대와 핏주머니를 뺄 거예요."

(나)"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선생님)"하나도 안 아파요."

"붕대 빼고, 소독하고 , 하나, 둘, 셋 하면 핏주머니 뺍니다."

핏주머니에 연결된 관이 들어간 구멍이 궁금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다리를 응시했다.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선생님께서는 구멍을 거즈로 가리고 순식간에 핏주머니를 빼셨다. 기다란 관이 내 다리 어디에 있었는지 신기했다.


거추장스러웠던 것들을 제거하고 나니 , 다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붕대를 칭칭 감은 내 다리를 보고, 핏주머니통을 보면서 욱신거리는 내 다리 안쪽이 궁금했는데. 붕대를 풀고 나니  수술자국이 그대로 보였다.  핏주머니 구멍 1개는 선생님이 가리셔서 보지 못했고, 관절경 구멍 3개, 세로로 길게 찢은 수술자국이 내 눈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 자국은 다리에 수술을 했음을 알려주는 영광의 상처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쑤시고 아프지만, 언젠가 이 자국도 오늘일도 희미해질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난 이날의 느낌을 잊지 않고 싶다. 수술을 하게 되면서 깨달은 것들을 말이다.


선생님은 불편한 점과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성큼성큼 걸음으로 병실을 나가신다. 그리고 간호부장이 들어온다.


올여름, 우리 가족은 홍콩으로의 휴가를  계획했다. 아들이  가고 싶어 하던 디즈니 랜드와 보고 싶어 하던 홍콩의 야경을 위해 티켓과 숙소 그리고 입장권을 예매했지만, 나는 8주 동안 걸을 수 없다.  수술로 취소된 여행의 비행기표 환불을 위해 소견서를 문의드렸고, 언제 퇴원하는지 여쭤보았다.


(간호부장)"환자분 3가지만 하시면 곧 퇴원하세요."

(나)"어떤 것일까요?"

(간호부장)"첫째, 다리를 쫙 펴서 바닥에 닿을 수 있어야 해요. 둘째, 다리를 쫙 펴서 들어 올릴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마지막은 다리를 120도 구부릴 수 있어야 해요. 이 세 가지만 하면 퇴원이시니 내일부터 열심히 연습하세요."


간호 부장의 말에 맞춰서 다리를 쭉 펴서 땅에 어보고, 들어 올려도 보고, 구부려본다. 다리 속이 묵직하고 당기고 아파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속으로 생각한다.

'곧 되겠지?'조금의 걱정과 희망이 교차하는 교차점이 내 마음과 만난다. 나는 압박 스타킹을 신은 퉁퉁 부은 내 굵은 다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원래도 굵지만 퉁퉁 부으니, 이런 다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굵은 모습이 내 눈에 가득 찬다. 가득 차서 좋다.

수술 후 몸이 조금 회복되고부터는,  집에서 마음껏 하지 못했던 독서도 하고, 책을 읽을 아지트도 찾고 지루하지 않은 병원생활을 보낼 것들을 차곡차곡 저축하고 있었다.


그 저축에 더해 오늘은 미션이 생겼다. 목표가 있는 생활은 활기를 불어넣어 줌을 알기에 목표는 반갑다. 나는  빠른 퇴원을 위한 목표에 다가감을 스스로 응원하며 마음의 준비 중이다.


앞으로 병원생활은 이 세 가지 미션으로 인해 어둠아픔의 장에서  희망과 활력의 음장으로 넘어갈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휠체어 바퀴를 밀어내느라 욱신거리는 손목을 번갈아 가며 마사지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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