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인식을 해놓았는데, 아이는 늘 한 번에 인식시키지 못해서 5번을 인식에 실패하고 집에 들어오지 못해 울면서 전화한 적도 있었다. 보통 2~3번 정도 실패하고 나서야 무사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매일 반복되는 실패음이 이제는 루틴이 되어버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실패음을 듣자마자 나는 후다다닥 원더 우먼처럼 달려가 문을 열어준다. 아들뒤로 2명의 친구가 따라 들어온다.
(아들)"엄마, 애들이 손이 더러워서 씻고 간데... 아 그리고 피아노 학원은 민중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친구들 앞에서 큰소리로 말하는 아들. 그 순간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기계음이 들린다.
"쿠쿠가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 밥을 잘 저어 드시기 바랍니다."
안 들어오면 불러서 밥을 먹여 피아노 학원을 보내려고 했는데 꼬마 손님들을 데리고 함께 옴과 동시에 딱 맞춰 갓 지은 밥이 다 되었기에 아이들한테 물어본다.
"민중아, 영후야 밥 먹고 갈래?"
아이들은 신나서 합창한다.
"예~야호, 신난다"
그때 한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였나 보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엄마가 밥 먹고 온다고 나더러 눈치 없데..."
아이들은 웃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밥을 먹고, 층간 소음을 배려해 개발한 엉덩이 축구를 하고, 조금 늦게 피아노 학원을 가고, 귀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학기 초가 되니 덩달아 우리 집도 바빠졌다. 학기 초와 학기말엔 유달리 아이들의 방문이 잦다. 경험상 학기 초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더 긴장한 아이들은 그 긴장감을 축구와 놀이로 놀이터에서 실컷 달랜다. 그리고 모자란 부분은 우리 집에 와서 채우고 가곤 한다.
그렇게 우리 집은 아이들에겐 긴장을 풀어주고 즐거움을 채우는 그런 장소가 되었다. 집도 그 집에 사는 구성원을 닮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들 그 아들로 인해 우리 집은 늘 아이들의 소리로 북적이고, 바쁘다. 인기가 없는 적막함과 고요함보다 사람과 소리로 채워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도이 집과 닮았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어떤 곳에서든 긴장을 풀게 하고, 경직된 분위기에 즐거움과 재미라는 소스를 채우며, 한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유가 몇 개 있다면 아이는 이미 하나는 찾은 것 같다.
아이는,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만들어 가고, 존재를 알아가는 인생 수업 중이다.그리고 그들의 중간즈음 아직 미완성 세계관을 지닌 중년의 내가 있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줄까?
-놀이터 이야기-
처음 놀이터는 참 쓸쓸했다. 3층 집에서 놀이터를 바라보면 마땅히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차야할 놀이터는 그 주인을 찾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뉴타운에 새롭게 형성된 마을,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 야무진 꿈으로 새 울음을 터트린 놀이터는 코로나로 인해 그리고 아직은 주인들로 채워지지 않은 수많은 집들로 인해 자기 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서서히 사람들이 채워지고 코로나가 물러가고, 더 많은 아이들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놀이터는 아이들의 웃음과 온기 그리고 활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놀이터에게 이름이 생겼다. "학군지 놀이터" 근처 학교의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 그 사용자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적막한 놀이터
-그 앞의 참새 방앗간-
방과 후 아이들이 모이면서 서서히 놀이터 앞 3층에 위치한 집은 바빠지곤 했다. 아이들의 방앗간, 같은 단지의 자기 집을 두고 3층 집으로 하교하는 아이도 생겼다. 벨이 울리면 방앗간 주인은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가끔 밖에서 놀기 귀찮은 방앗간 집 아이는 집에서 놀고 싶어 한다. 놀이터에 채워야 할 기운들이 이 집에 채워진다. 특히 추운 겨울이 되면 더욱 그 기운은 고스란히 방앗간에 채워진다.
아이들은 행복하다. 하지만 이 집의 화분들은 귀엽지만 반드시 귀엽지만은 않은 초등 남자아이들의 공차기로 몇 개가 분리수거장으로 직행하며 유명을 달리했고, 냉장고는 홀쭉해졌다. 그리고 책장의 "흔한 남매", "엉덩이 탐정"등과 같은 인기 도서들은 아이들이 읽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그 자리를 지킨다.
-엄마 이야기-
이사를 하고 입주한 이후 우리 집은 늘 아이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가 1학년때는 엄마들도 함께 방문하곤 했었다. 이러한 방문은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학교의 위치상 우리 집이 학교에서 매우 가까웠고, 3층 베란다에서는 언제나 놀이터가 한눈에 들어왔고, 현재 놀이터 상황이 어떠한지 아이들의 놀이 생활을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그런 지리적 위치를 자랑했다.
처음엔 집 앞 놀이터에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모이다가 어느새 그 수가 점점 늘어났고,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흐르는 세월만큼 추가되었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방앗간 같은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비품이나 물건(축구공, 물, 화장실 등)이 있을 때 아이들이 들리는 집이 되었다.
집 안의 비품과 먹거리는 축구를 사랑하고 늘 배고픈 이 집 아들 덕에 모든 것이 풍부했다. 그리고 언제나 챙겨주는 엄마까지 있으니 아이들에겐 한 번쯤은 들리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을까?
아이들로 채워진 놀이터
엄마는 때로 피곤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었다. 불시에 찾아오는 아이들 덕에 하교 시간이 가까워지면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한결 편안해졌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니깐. 그것만으로 됐다.
그래서 그럴까? 어떤 아이는 집에 엄마가 없을 때마다 옆동의 자기 집을 놔두고 방앗간으로 하교를 한다. 친구들이 모이는 방앗간이 좋아서 그럴까? 아들이 환영하지 않아도 방앗간으로 하교를 하고, 아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귀여운 아이가 있다. 아들은 가끔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그 친구는 한결같다. 둘의 관계는 참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