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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Mar 21. 2023

삶의 레시피

만원의 행복, 봄꽃 속으로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이사, 아이의 유치원 졸업, 초등학교 입학, 남편의 발령, 인간관계의 회의감등 나와 우리 가족은 각자의 생애주기 속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또 느꼈다. 그리고 잠시 멈춤 속의 변화와 함께 그 경험만큼, 세월만큼 성장했다.

 

코로나의 종식을 알리는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될 즈음,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봄날을 맞이했다. 분주했던 지난날들 그 끝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피곤함과 노곤함에 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쭉쭉 뻗어나가는 여름과 같은 인생길을 달리며, 그 무성함의 결실은 노곤함도 잊게 했다. 그 결실의 가을을 지나, 잠시 멈춤의 황색 신호인 코로나가 우리에게 찾아왔고,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한 정지된 인생이 내가 그때 노곤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노곤함 뒤의 휴식을 깨고 지금 나는 봄날을 준비하고 있다.


잊고 지냈던 만남들이 기지개를 켜고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을 위해 고속터미널로 향한다. 늘 가던 백화점과 지하상가를 이제 마스크를 벗고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지하의 공기는 상쾌하지 않았지만 답답함을 깨는 홀가분함에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꽃들 속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다 보면 어김없이 커피숍과 꽃집을 지나게 된다. 몇 년간 늘 꽃집 앞을 지나면서도 무심하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꽃들. 오늘은 그 꽃들의 알록달록한 하모니에 이끌려 잠시 멈춰 바라본다.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조금 있다 꼭 다시 와야지'


약속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 일부러 꽃 집 앞을 지나간다.

라벤더 색상의 파스텔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작은 꽃봉오리가 섞인 야리야리한 꽃 한 다발과 그 꽃과 어울릴만한 안개꽃 한 묶음을 집어든다.


라벤더와 하얀 안개꽃의 조화가 여린 봄을 알리는 것 같이 제법 잘 어울린다.





신혼 때였다. 한창 저축과 내 집마련에 에너지를 쏟을 시절, 남편이  퇴근하면서 꽃다발을 사들고 온 적이 있었다. 신혼 때의 남편은 작은 감성을 장착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 꽃을 사는 돈조차 왜 이렇게 아까웠는지 나는 고맙다는 말대신 뭐 하러 돈 아깝게 꽃을 사 오느냐고 타박했다. 그때의 그 말 한마디로 그 이후 1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꽃 선물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현실이 감성을 눌러 버린 그 사건, 40이 넘은 지금은 현실뒤 감춰진 감성을 드러내며, 예쁜 꽃을 보며 마음 가득 따뜻한 감성을 채우는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은 내 손으로 꽃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남편의 수줍은 꽃 선물에 '고마워'라고 말하며 꽃을 받아 든 손을 얼굴로 가져가 향기를 맡으며 밝게 웃는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메마른 현실에 꽃다운 감성 몇 스푼을 첨가해 따뜻함 가득, 마음만은 여유로운, 즐기는 삶을 살아가는 상상속의 내가 있다.


 오랜만의 설레는 만남과 꽃의 대화, 그 꽃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의 만남.


애써 감성을 누른 현실 속 이성을 선택한 나는 코로나의 긴 터널 지나오며 현실과 이성의 표면에 가려진 나의 감성을 마주하고 끄집어냈다. 그리고 이내 끄집어낸 감성과 이성은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 현실이라는 이성 밑에 숨어있던 따뜻한 감성은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이후 감성이 이성보다 더 큰 삶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는다.

 

만원의 꽃다발은 필수 불가결한 의식주도 아니고, 인풋과 아웃풋이 눈에 보이는 투자상품도 아니다. 언젠가 시들어서 없어져 버리는 존재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전달하고 순간의 기분을 표현해 주는, 의식 속 물질의 가치 밑에 숨은 존재와 같다. 그 작은 존재가 주는 행복은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레시피의 재료가 되는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파스텔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봄꽃

이제부터 써나갈 풍요로운 삶, 현실 속 진주 같은 나의 감성 스토리, 그 레시피 재료의 하나인 봄날의 꽃 앞에서 나는 설렘을 내보이듯 수줍은 미소로 감성과 함께 채워갈 삶을 그려본다. 군데군데 널려있는 재료를 모아 나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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