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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0. 2023
강낭콩과 봄날
소중한 강낭콩 하나, 씨앗, 그리고 가능성
3월의 어느 봄날,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향해 손에 잎과 줄기가 올라온 작은 화분을 들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교문을 나오고 있다. 옆 친구 식물은 제법 키가 큰데 아들의 그것은 더 여리고 작아 보였고, 그래서 옆의 아이의 화분에 더 눈길이 갔다.
"호박아, 이 식물은 뭐야?"
"응 학교에서 강낭콩을 심었는데 이만큼 자랐어. 선생님이 이제 집에서 키우라고 가지고 가라고 하셨어."
옆 친구의 화분을 보며,
"유민이 강낭콩은 키가 많이 크네, 호박이 강낭콩은 작아서 귀엽다."
"햇빛을 더 잘 받는 위치에 있었던 애들은 키가 더 많이 컸어."
식물도 생명인지라 좋은 환경에서는 더 잘 크나 보다. 같은 시기 같은 씨앗을 심었고, 비슷한 시기 학교에서 아이들이 물을 주고 키웠는데 아이들 손에 들린 강낭콩은 그 키가 다 제각각이다. 다양한 사람들처럼 다양한 모습의 크기로 자라났다.
나는 식물을 잘 못 키운다. 아들이 가져온 여리고 작은 강낭콩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 집은 베란다도 없었기 때문에 식물을 키우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3층이라 충분한 해를 받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키우기 쉬운 식물도 여러 번 키워봤지만, 늘 그 끝은 마른 이별이었기에 이 작은 생명이 부담되었다.
아들이 심은 강낭콩이고, 그것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주는 식물이기에 거실 창가에 놓고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조금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도 맺을 거라고 하셨어. 나 학교 가면 엄마가 잘 보살펴줘."
어느 날 강낭콩의 키가 부쩍 커서 자기 키를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저대로 두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비공인 화초 전문가인 친정엄마께 전화를 걸어 비법을 전수받아 식물 지지대를 구입하여 설치해 주었다. 강낭콩은 이 지지대에 기대어 한결 편안한 모습이다.
그렇게 우리와 동거를 시작한 여린 생명은 큰 보살핌 없이도 본연의 생명력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연분홍의 화려하지 않지만 참하고 수줍은 꽃봉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박이는 자기가 심은 식물에서 나온 꽃봉오리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명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생명력이 강한 강낭콩은 보살핌에 능숙하지 않은 주인을 만났지만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웠다. 최소한의 보살핌에도 자신의 생명력을 뽐내며 기쁨을 준다. 그리고 며칠 후 예쁜 꽃이 지고 그 자리에는 초록색 콩깍지 하나가 열렸다.
호박이와 나는 소중한 열매를 따서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작지만 반질반질 윤기가 나서 야무져 보이는 작은 강낭콩 딱 하나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우연히 시작된 강낭콩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고, 우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작은 씨앗을 선물로 받았다.
강낭콩 하나